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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팍스로마나와 5현제 시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도미티아누스 스타디움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 중의 하나다. 로마 11대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세운 이곳에서는 여성이나 난쟁이 검투사들이 처음으로 경기를 벌였으며 등불을 환하게 켜서 야간 경기를 진행했을 정도로 당시로선 호사스러운 광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황제는 재임기간 공공사업에 과도하게 투자하고 해외 원정에 욕심을 부리다 결국 제국의 경제를 파탄시키고 경기 후퇴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로마 통화인 데나리우스의 가치가 한없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정치 휘둘리지 말고 경제개혁을 그런 그에게 내려진 형벌이 바로 기록말살형(Damnato Memoriae)이었다. 잘못된 황제의 기록이 새겨진 동판이나 초상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녹여버리거나 파괴시키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처벌인 셈이다. 이 같은 형벌은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 자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후 로마제국은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세습이 아니라 원로원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황제로 지명하면서 타협의 정치 체제가 자리 잡았고 이를 바탕으로 걸출한 황제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5현제시대를 맞게 된다. 로마제국이 과거의 혼란을 딛고 일어서 100년간에 걸쳐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는 이른바 '팍스 로마나시대'가 열린 것이다. 5현제는 시민들의 복지에 정성을 기울이면서도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군사력 팽창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최근 국가 부도위기에 몰린 이탈리아에서 17년간 장기 집권해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물러난 후 경제학자 출신이자 친시장주의자인 마리오 몬티 총리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는 그리스도 경제 전문가가 등장해 위기를 타개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새로 집권한 이들도 아마 옛 로마시대의 기록말살형을 오늘에 되살리고픈 생각이 있지 않을까 싶다. 방만 재정과 온갖 추문으로 얼룩진 전임자들의 자취를 말끔히 떨쳐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출발을 하자면 말이다. 사실 이탈리아의 경제구조를 꼼꼼히 뜯어보면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한 17년간 워낙 성장률이 낮다 보니 시장의 집요한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 해고가 어렵다 보니 고용을 꺼리고 취업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유럽에서 노동시장이 가장 경직됐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업하기에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새 내각 구성도 여러모로 기존의 판을 뒤엎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몬티는 주요 정당을 찾아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당하자 자신이 직접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등 경제전문가와 학자들을 끌어 모아 전문관료 중심의 내각을 구성했다. 그가 구태에 묻은 정치인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로마에 새로운 현제시대 열리길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인기에 영합하고 개인적 영달에만 신경 쓰기 마련이다. 작금의 유럽위기도 정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채 각자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크다. 아무리 나라가 벼랑 끝에 몰리더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득실과 입지 약화만을 따질 뿐 변변한 대책 하나 마련하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몬티의 어깨에는 지금 이탈리아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사수라는 무거운 짐이 얹어져 있다. 나아가 세계 경제의 운명이 그의 개혁정책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지금 세계 경제가 살 길은 남유럽의 지도자들이 과거처럼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강한 추진력을 갖고 착실히 경제개혁을 실행에 옮기는 데 달렸다. 그들이 임무를 제대로 실천함으로써 로마에 새로운 현제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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