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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의 한 버려진 주택가. 폐허가 된 집들을 사진에 담으려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는데 남루한 차림의 두 흑인 청년이 위협적인 눈빛으로 자동차를 막아섰다. 급하게 페달을 밟아 반대편 차선으로 피해 가며 위기를 넘겼다. 안내를 해준 김태균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 조사팀장은 "도시 파산 이후 치안 상태는 미국 내 최악이 됐다"며 "외곽 주유소에서는 대낮에도 강도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해 기름을 넣기가 겁날 정도"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오후 디트로이트 도심의 MGM호텔 카지노에서는 무표정한 노인들이 객장을 거의 가득 채운 채 슬롯머신·룰렛·블랙잭 등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는 7월이면 파산 1년을 맞이하는 디트로이트의 미래에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정보기술(IT) 벤처와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 육성을 통해 1990년대 초 미국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과거의 영광을 재연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미 북부의 실리콘밸리'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 아래 지난달 말 부족한 예산을 쥐어짜내 올해 신생 기업에 3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 디트로이트시는 해외 IT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최근 연방정부에 고학력취업이민(EB-2) 쿼터 5만개를 할당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대부분 1인 기업이지만 3만개에 달하는 신생 벤처의 성공에 미래를 걸었다는 얘기다.
1950년대 180만명에 이르던 인구가 현재 70만명까지 줄었지만 젊은 IT 인력들은 디트로이트 교외로 몰리는 추세다. 실제 미시간주의 벤처투자 업체는 지난 5년간 84%나 늘었다. 지난해에는 구글이 디트로이트에 연구개발(R&D) 허브를 설립했고 올해는 신생기업 투자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 벤처가 도심에 사무소를 세웠다. 실리콘밸리의 유망 벤처 기업인인 테드 세르빈스키는 "디트로이트 신생 기업에 5,5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며 "디트로이트가 지금은 돈 잔치에 물든 실리콘밸리 초기 시절의 혁신정신과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때 미국 경제의 아이콘이었던 디트로이트의 사망선고를 지켜볼 수 없다며 외부 지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월가의 대형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지난달 주택 수리, 폐허 정리, 일자리 창출 등에 1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디트로이트의 또 하나의 승부수는 엔터테인먼트다. 이달 초 도심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테크노 음악 페스티벌을 열자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리기도 했다. 1980년대 테크노 음악의 본산지라는 명성을 산업 육성으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또 현재 간혹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되는 MGM 카지노에도 조만간 디지털 애니메이션 시설 등을 갖춘 스튜디오 센터가 들어서게 된다. GM의 트럭 공장 역시 몇 년 전 영화산업을 위한 스튜디오로 개조됐다.
특히 영화산업 육성에 대한 디트로이트의 의지는 지난해 7월 파산선고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도심 한복판을 2주일간이나 영화 '트랜스포머4' 촬영장으로 제공한 데서 잘 드러난다. '로보캅'도 세제혜택 등으로 유인해 디트로이트에서 촬영한 영화 중 하나다.
하지만 이 같은 절박한 노력에도 디트로이트의 미래는 아직 암울한 실정이다. 여전히 주택 8만4,000채가 버려져 있고 공식 실업률은 8.3%지만 구직 포기자까지 합치면 15%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시간주 상원이 이달 초 디트로이트 재생 계획안을 승인했지만 연금 파산법원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다 연금삭감에 대한 은퇴자들의 반발도 거세다.
또 미시간주 경제와 자동차 시장이 회복되고 있지만 대부분 업체들이 오래전 본부와 생산시설을 교외로 이전한 탓에 파급 효과를 누리고 못하고 있다. 수십개에 달하는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도 거의 모두 사무실을 외곽에 두고 있다. MGM 카지노에서 만난 은퇴자 켄 아담스씨는 "지난 30~40년간 디트로이트가 매년 눈에 띄게 망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도시 정상화가 성공하더라도 똑같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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