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경 66권 중 마지막 권인 묵시록엔 개개인의 운명이 적힌 ‘생명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심판의 마지막 날, 창조주가 기록해 둔 책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 살 수 있고, 그 전에 너무 많은 죄를 지어 ‘불가’ 판정을 받으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참회와 반성에 그토록 정성을 쏟는 이유가 ‘종말론적 믿음’에 기초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러분은 아마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중세 유럽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얘기를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과거 종교 개혁의 단초가 되었던 바로 그 면죄부 얘기 말이다. 기원후 800년경 교황 레오 3세 때 처음 등장한 면죄부는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극성을 이뤘다. 로마 교황청이 점차 권위가 하락하고 재정을 충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유럽 곳곳에서 남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 교회의 직할지가 아닌 신성로마제국 영토 안이나 루터가 생활했던 제후 국가인 작센 주 인근까지 면죄부 판매원들이 진을 쳤을 정도였다. 지역의 신부들 그리고 유명한 철학자들까지 나서서 ‘면죄부를 꼭 사서 당신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라며 부추겼다. 사실 마르틴 루터는 처음부터 개신교라는 종파를 창설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기존 가톨릭 교회가 ‘면죄부’와 같은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기만 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수도사의 길을 계속 걸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를 단 한 번의 금전적 대가로 바꾸려는 ‘발칙한 탐욕’을 루터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면죄부로 인한 논란은 수많은 귀족과 신학자들이 가톨릭교로부터 이탈하는 원인이 되었고, 훗날 30년간의 종교 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역사책을 들춰보지 않아도 면죄부를 앞세운 집단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번 반성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패키지로 ‘사면’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솔깃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면죄부가 종교적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 중반 때마다 항상 제기되는 ‘특별 사면’이 있잖은가. 그 중에서도 국가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재벌 총수들의 사면 복권 문제는 사정 당국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우선 재계는 오너(owner)의 전략적 판단이 중요한 기업 조직의 특성상 감옥에 수감 되어 있는 리더가 회사에 돌아와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주인이 없으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는 논리다. 반대쪽에서는 언제까지 주주 자본주의에 입각한 시장 경제 체제에서 ‘오너의 결정력’ 운운하며 사면을 검토할 것인가라는 비판을 쏟아낸다. 지분율만 놓고 봐도 오너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점도 지적한다. 재벌 총수의 복귀로 인한 경제적 효과 역시 한쪽의 주장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매번 사면을 싸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진행된다. 이번 특별사면 역시 마찬가지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역대급 특사가 예고된 가운데 정부는 공식 발표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조심하는 만큼 실로 특별 사면 리스트 발표로 인한 여파는 엄청날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과거 두번이나 사면받았던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이번에 사면 받으면 세번째 면죄부를 발급 받는 김승연 한화 회장이 나머지 총수들의 사면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법적으로 죄 사함을 받더라도 국민들의 집단 기억 속에 면죄부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법적으로 없었던 일이 된다고 해서 정말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으로 과오를 씻어 내는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부디 진정한 기업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도, 광복 70주년이라는 포장지를 덮어 용서를 남발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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