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을 빨리 이해하기 위해 활용되는 방법이 '범주화'다.
특정 사람을 설명할 때도 가령 출신지별로는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등으로 학벌은 '일류대' '수도권대''지방대' 등으로 카테고리화해서 말하면 쉽다.
그런데 범주화의 문제는 설명하는 대상의 세부적인 특징을 깔아뭉갠다는 데 있다.
경상도 사람이라도 야성이 강할 수 있고 지방대 출신이라도 일류대 출신보다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그래서 범주화는 빠른 판단에 도움이 되지만 속단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범주화를 말하는 것은 관피아 논란 때문이다.
세월호 사태로 관피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금융계도 예외는 아니다.
손해보험협회는 1년 가까이 후임 인선이 안되고 있고 다른 협회로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경제부처 출신이 도맡다시피 했던 협회장 자리에 금피아(금감원+마피아),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식으로 후보자 출신을 범주화해 금을 긋다 보니 문제가 꼬이고 있다.
인물에 대한 판단은 뒷전이 돼버리고 오직 집단만 남아 그 집단의 구성원은 안 된다는 식의 도그마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어 안타깝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왜 그렇게 많은 협회들이 무수히 욕을 먹으면서 금융감독원·기획재정부 출신의 관료를 협회장으로 '모셔' 왔을까. 집단을 빼고 인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일단 보험협회 등은 이익단체다. 민영 보험사들이 모여서 결성됐고 회원사의 회비로 운영된다. 기본적으로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해 법과 정책을 회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게 존재 이유다.
협회장 선임은 이런 기본원칙 아래 수행되는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협회장 자리에는 당국과 말이 되는 사람을 '모셔' 오는 게 좋다.
관 출신이 가장 효율적으로 협회장으로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데 굳이 다른 데서 사람을 구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당국이 금리·보험료 등 경영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가격까지도 단속한다. 그런 사정을 잘 안다면 대 로비 창구의 대표격인 회장 자리에 관피아가 앉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런데 앞으로는 관 출신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니 답답한 것은 오히려 협회다.
일각에서는 협회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협회장으로 일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협회의 정체성과 협회장의 역할론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
금피아·모피아 등의 집단은 접어두고 인물론에 입각해서 보면 관 출신 인사가 협회장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게 현실이다.
관피아의 부작용은 그것대로 풀어야지 집단의 이름 아래 특정집단 소속 인물을 원천배제하는 식의 접근법은 되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금융권에는 감시자도 많다. 관 출신의 협회장이 온다고 해서 민관이 한통속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유치하기까지 하다.
협회장을 민간에서 뽑아도 이런 금융 토양이라면 고문이 됐든, 부회장이 됐든 관피아는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바꿔야 하는 것은 인선절차와 시스템을 무시하고 끼어들어오는 낙하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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