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스 국민들은 유럽의 길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남기를 선택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신민당 당수는 재총선을 치른 17일(현지시간) 밤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승리를 확인했다.
신민당은 곧바로 사회당(PASOK) 등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유럽연합(EU) 등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추가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긴축안 이행, 거덜난 국가재정 등 해결 과제가 산더미처럼 널려 있어 새 정부의 앞날은 여전히 어두운 상황이다. 더구나 일단 봉합된 그리스 위기가 다시 재연될 경우 스페인ㆍ이탈리아 재정위기, 유럽 경기침체 등이 증폭 작용을 일으키면서 유로존이 더 큰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연정 구성 성공할 듯=득표율 29.6%로 1위에 오른 신민당은 제1당에 몰아주는 비례대표 50석을 합해 129석을 차지하게 됐다. 신민당은 곧바로 차기 정부 구성을 위한 연정구성 논의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연정 파트너로는 지난 정권에서 함께 연정을 꾸렸던 옛 여당 사회당이 유력시되고 있다. 사회당은 이번 재총선에서 12.2%를 득표하며 33석을 얻었다. 두 당의 의석을 합하면 162석으로 과반(정원 300석)을 확보하게 된다. 또 사회당과 공동 보조를 취하는 민주좌파(17석)까지 가세해 3개당이 연정에 나설 경우 188석으로 더욱 안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에방겔로스 베니젤로스 사회당 당수는 "진정 유로존에 남아 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내일 새 정부가 출범해야 한다"고 강조해 연정구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세계 각국 환영 속 구제금융 재협상 나서나=신민당이 주도하는 그리스 새 정부는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 체결한 2차 구제금융 협정(MOU)에 대해 재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리자가 주장한 '전면 재협상'과는 다르지만 긴축과 관련한 일부 조건 등을 완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장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유로그룹) 의장은 "그리스 새 정부가 출범하는 대로 트로이카 팀이 아테네를 방문해 향후 진로와 재정긴축 및 개혁 이행을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IMF는 '책임 있는 정부'와 대화하겠다며 아테네 사무소를 철수했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국들은 그리스 재총선 결과를 환영하는 가운데 구제금융 조건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디디에르 레인데르스 벨기에 외무장관은 "재정적자 감축 목표 시한들에 대한 논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그리스의 구제금융 이행조건 자체에 대한 재협상은 불가하지만 이행 시한은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스 곳간 바닥…"연정 미래 불투명" 지적도=그러나 연정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신민주당은 균형재정 목표 시한 연기, 연금 삭감 규모 축소 등을 희망하고 있지만 트로이카는 구제금융 이행 조건 자체에 대해서는 재협상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재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는 것도 긴축을 이행해야 하는 새 정부에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그리스의 현금 보유액은 현재 20억유로(2조9,400억원)에 불과하며 다음달 20일까지 공공 부문 근로자들의 임금과 연금을 지급하면 모두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총선 이후 트로이카가 지급을 유예한 10억유로가 절실한 상황이다. 게다가 그리스 경제성장률은 최근 5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22.6%에 달하고 있다.
또 긴축에 반대하는 시리자의 입지가 예전보다 크게 확대돼 의회에서 긴축 법안을 둘러싸고 장기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8일 국제금융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1위인 신민주당이 연립정부를 조기에 구성하겠지만 연정의 미래는 매우 불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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