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문재인씨가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 한 달 전에는 박근혜씨가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고 재야의 안철수씨는 아마도 이번주 안에 공식 후보로 나선다 한다.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글을 다뤄온 탓일까. 필자에게는 어떤 사람의 글이나 연설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고약한 습관이 있다. 한 사람이 인생을 들여서 쌓아온 내실은 글이나 말만으로 알아내기 어려운 법이지만 단단하고 정연한 논리와 아름답고 기품 있는 표현으로 가득한 글을 읽거나 말을 듣다 보면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 차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들이 작성한 연설을 마음에 들 때까지 손수 뜯어 고치곤 했다고 한다. 때때로 그렇게 고친 연설이 참모들의 면밀한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입을 거쳐 나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한차례씩 '언어 전쟁'의 몸살을 앓아야 했다. 원대한 비전을 품었던 대통령은 진정을 몰라주는 제도권을 답답해했고 제도권은 대통령의 품격 문제로 맞불을 놓고 재임 중에는 탄핵으로, 퇴임 후에는 사찰로 공세를 펴서 마침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필자는 소박하고 꿈이 넘치며 소탈하고 보통사람의 상식에 기댄 정치인 노무현의 말을 사랑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만 개인이 아니라 동시에 헌법이 규정한 국가기관이므로 대통령 노무현의 말은 더 신중하고 격을 갖추는 게 옳다고 여겼다. 대통령의 말이라면 정치인 노무현의 말이 이끌었던 시대정신을 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언어와 문장에서도 당연히 사람이 따를 수 있는 일정한 격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근혜, 문재인 두 대통령 후보의 수락 연설문은 사실상 이도저도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시대가 지시하는 '이성의 법'만을 따르는 데 열중한 나머지 정치인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가슴이 시키는 '열정의 법'을 따르지 않았다. 연설문 대부분은 문(文)으로 크게 흠잡을 곳은 별로 없었지만 어딘가에서 들었음직한 것을 가져다 나열한다는 느낌이 들 만큼 평범했다. 후보 개인의 삶과 시대정신이 하나로 이어져 뿜어져 나오는 개성적이고 열정 어린 표현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연설을 들은 뒤에도 머리가 시키는 이해는 있었지만 가슴이 울리는 감동은 적어서 데면데면했다.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지드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란 열정이 자극하고 이성이 써나가는 글"이라고 했다. 이성 없는 열정은 공허하고 열정 없는 이성은 범박하다. 후보의 말이 공허하면 선거는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고 범박하면 진흙밭 개싸움으로 전락하기 쉽다. 선거는 시작됐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단단한 이성과 사람들 마음을 뛰게 할 열정을 고루 갖춘 멋진 연설을 듣고 싶은 것은 정녕 나만의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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