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조두순 사건'을 특종 보도한 한국일보는 그간 피해자 A양 가족에 대한 취재를 자제해왔다. 심리적 불안정 등 2차 피해를 우려해서다. 하지만 A(8)양의 아버지(41)는 우리사회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이며 여러 차례 본보 인터뷰에 응해 비극 이전 현명하고 천진난만했던 A양과 평화로웠던 가정, 이후 달라진 삶과 상처, 그리고 극복의지를 피력했다. 인터뷰는 병원 계단통로에서 했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안간힘을 내고 있었다. /편집자 주 12일 밤 우리 부녀는 병실에서 볼륨을 줄인 채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을 묵묵히 지켜봤다. 아내와 막내는 잠들었다. 골이 터져도 아이는 아무 표정 없이 담담했다. 간혹 "몇 대 몇이야"라고 물으면 아이는 "1대 0" "2대 0"이라고 짧게 답했다. 아이는 사건 발생 나흘 만인 금요일(11일) 말문을 열었다. 병원생활이 심심하다고 했다. 예전에 갖고 싶어 했던 닌텐도 게임기를 사줬다. 아이 둘이 게임을 하면서 토닥토닥 다퉜다. 그 모습이 평상시랑 똑 같은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부모보다 동생이 낫다. 딸은 살이 계속 빠진다. 몸무게가 27㎏인데, 벌써 2㎏이나 빠졌다. 밥을 먹는데 세 숟갈 먹고 다 토해낸다. 배가 부르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하루 살이 빠진다. 무섭다고 해서 형광등을 켜두는데도 밤에 잠을 못 잔다. 집에선 불 끄고 혼자 자던 애다. 새벽이면 깬다. 잠이 들도록 딸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예전엔 (네가) 아빠 어깨랑 목 많이 주물러줬으니까 이제 아빠가 해줄게." 아이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빠로서 해준 게 거의 없다. 해외출장이 잦아서 한번도 딸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다. 3~4개월 외국에 나가있다가 10일 정도 국내에 쉬러 들어오는 정도다. 이번에도 5월 말에 들어왔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편의를 봐줘서 퇴원할 때까지 딸 곁에 있을 수 있다. 다음달이 딸의 생일이다. 그간 못한 거 한번에 다 해주고 싶다(아빠는 눈물을 참았다). 딸이 말 안 할 때가 가장 속상하다. 첫날에도 울지 않았다. 굵은 주삿바늘이 들어가는데도 자기 살이 아닌 것처럼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엔 꾀병도 부리고 엄살도 피우던 애가 하루에 몇 번씩 상처부위를 소독하는데도 아프단 얘기를 하지 않는다. 차라리 펑펑 울었으면 좋겠다. 일부러 말을 붙였다. "다 나으면 바이킹 타러 가자."(아이가 놀이공원에 가면 몇 번이고 탈 정도로 바이킹을 좋아한다) 딸이 씩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아프면 표현을 해" 했더니 며칠 지난 뒤에야 아프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멍하니 앉아있다. 정말 활달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쳤다. 가족이 있을 때 곧잘 피아노를 쳤다. 어떤 곡은 참 듣기 좋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곡 좀 쳐라"라고 하면 내가 밥 먹을 때마다 그 곡(바흐의 '미뉴에트')을 연주했다. 악보를 안 보고도 잘 쳤다. 듣기가 참 좋았다. 듣고 싶다. 수술하던 날은 분노가 치밀었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전날에도 멀쩡하던 애가….' 범인을 죽이고 싶었다. 관련 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어디를 만지면 몇 년, 특정 부위를 만지면 몇 년, 이런 식이더라.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아이의 인생을 망친 짐승이 살 가치가 있나. 최소한 무기징역, 최고 사형을 줘야 한다. 그래도 아이 앞에선 밝게 웃으려고 노력한다. 심리학 선생님이 와서 "부모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 부모가 절망하거나 분노하면 아이가 자신의 상태를 그리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딸 앞에선 수다스럽게,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짓는다. 아내랑 밥을 먹다가 갑자기 둘이 그냥 운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아이 앞에선 울지 않는다. 12일 2008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가명)이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원에 찾아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겠다고 했다. 딸의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 13일 오후에 30분 정도 만났다. 딸이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나영이 아버지가 한약을 선물했다. 나영이도 배가 아팠는데 병원 약이 잘 안 들어서 지어 먹이던 것이라고 했다. 조기치료 및 심리치료의 중요성도 조언했다. 나영이는 조기에 치료를 잘 받아 학교도 잘 다니고 있고, 성격도 밝아졌다고 했다. 나영이는 올해 한번 더 수술을 받으면 인공항문을 뗀단다. 나영이 아버지도 부모의 안정을 강조했다. 밝게 웃으라고, 자신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나영이가 자신이 선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딸에게 주고 싶다고 했단다. 다음에 만날 때 받기로 했다. 범인들은 죽일 놈이라고 공감했다. 동병상련을 느꼈다.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하면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물을 참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 "(이런 걸 당할) 아이가 아닌데"라며 죄송해 했다. 학교 친구들은 오지 말도록 했다. 퇴원하고 나서 만나게 하고 싶다. 하지만 퇴원 뒤에도 학교는 못 갈 것 같다. 허리 옆에 인공항문을 끼고 어떻게 학교를 가겠나. 다행히 성기능엔 장애가 없다고 하더라. 수술을 2번 정도 더 받은 뒤 한달 정도 병원에 있어야 하고, 퇴원 뒤에도 6개월 정도는 통원치료를 해야 한단다. 몸이 좀 나으면 심리치료를 할 생각이다. 아이가 다 잊고 옛날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 모두. 13일 오전 A양은 처음으로 침대에서 나와 손수 휠체어를 타고 병실 안을 서성거렸다. 동생과 옥신각신 대화도 나눴다. 아빠는 책을 읽어줬다. 엄마는 곁에 앉았다.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단란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창문을 통해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아직 A양은 병실 문 쪽을 바라보지 못한다. 낯선 이가 오면 몸이 굳는다. 다른 병실 문은 활짝 열려있지만 A양의 병실은 패트병 지름만큼만 열려있다. 그 문이 활짝 열리는 날 A양은 "집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할 일이 참 많다. 아버지에게 피아노도 들려줘야 하고, 상을 여러 번 탄 그림도 그려야 하고, 가고 싶은 수영장에도 가야 한다. A양이 병실에서 물감으로 그린 그림엔 녹색 풀과 파란 구름이 넘실거리고 밤색 애벌레가 꿈틀거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