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가리지 않고 배우려 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정신이 약해 보이는데 특히 창업가의 경우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다른 부분을 외면하면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10일 인천 고잔동에 있는 본사에서 만난 강국창(69ㆍ사진) 동국전자 회장은 젊은이들이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습득하는 '통섭'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당수 핵심 가전부품을 국산화해온 그는 '한국 가전산업의 전설'로 통한다. 칠순이 다된 강 회장은 지금도 작업복을 입고 연구실에서 직접 가전부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냉장고 문에 장착되는 마그네틱 장치, 세탁기의 공기방울 장치, 전자밥솥의 보온 센서 등이 강 회장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제품들이다. 그는 동국전자 외에 동국개발ㆍ가나안전자정밀ㆍ성신하이텍ㆍ동국수산 등을 경영하며 삼성ㆍLG 등 각종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한국 산업화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온 강 회장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무를 중시한다. 그는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지금도 일반 직원보다 비싼 밥을 먹지 않는다"며 "이미 기업으로 성공한 사람은 빈부격차와 기업에 대한 적대감 해소를 위해서라도 사회에 환원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최근 낙후된 농촌지역 개발을 위해 최근 제주도 서귀포시 75만9,374㎡ 부지에 '스프링데일 골프&리조트'라는 휴양시설을 건설 중이다. 4~5년 전 양식업을 하는 동국수산의 인근 주민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골프장 건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들인 것. 70대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는 그는 골프ㆍ승마ㆍ요트ㆍ공연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시설을 완성시켜 사람들이 제대로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겠다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탄광촌서 키운 기술보국의 꿈
강 회장은 자신이 사업가로 성공한 것을 두고 몇 번이고 '기적'이라 표현했다. 그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는 뜻이다.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서 지역 기업의 도움으로 대학 진학에 성공한 그는 가전부품 회사에 입사, 전자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1976년 성신하이텍(옛 성신화학)을 창업하며 사업에 나선 강 회장은 당시부터 세탁기ㆍTV 등 각종 가전제품 부품에 관한 국내 최초 기술을 수 없이 만들어내 한국 전자산업의 자립기반을 튼실해 하는 데 일조해왔다.
그는 "사업 초창기에는 대표인 내가 대부분의 기술을 모두 개발했다"며 "처음부터 국내 최초나 진입장벽이 아주 높은 기술의 제품이 아니면 만들지도 않았다"고 술회했다. '아직도 기술 개발업무를 하고 있냐'는 질문에 "개발업무는 내 취미생활과 마찬가지"라며 웃어 보였다.
연세대 전기공학과 출신인 그는 사업 초기부터 엔지니어 업무를 도맡아 해왔다. 기술을 최우선시하다 보니 동국전자 등 기존 그룹사에는 납품 부문 사원만 있을 뿐 영업사원은 거의 없다. 마케팅 없이도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밖에 없을 만큼의 기술만 개발하면 된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동국전자는 요즘 세탁기 속 물 온도를 높이는 장치를 국내 최초로 만들고 있다. 강 회장은 "국내 가전업체들이 세탁기 속 물을 덥히는 부품을 아직도 해외에서 전부 수입해 쓰고 있다"며 "안전기술을 확보하기 어렵고 해외 특허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3~6개월간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 올 하반기부터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힘줘 말했다.
◇지역사회 발전 위해 휴양시설 사업 시작
40년 가까이 전자 부품업 쪽에서 사업을 이어오던 강 회장이 갑자기 휴양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강 회장은 "해당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답했다.
강 회장은 환갑을 넘어서면서 노후를 위해 쉴 곳을 찾아 제주도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던 버릇 때문에 그냥 쉬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양식업이 주 사업인 동국수산을 세웠다.
당시 양식장이 있는 해당 지역은 전통적으로 감귤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라 개발 대상에서 소외돼온데다 최근에는 중국산 감귤과의 경쟁력 싸움까지 치열해져 마을에 위기 의식이 팽배했다고 한다. 강 회장은 "제주도는 농사가 잘 안 되는 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다 보니 개발 전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살았던 해당 마을 주민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었다"며 "특히 마을의 젊은 지도자들의 사연을 듣다 보니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처음에는 골프장을 직접 운영할 생각보다는 이를 할 수 있는 대기업을 소개시켜 줄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웬만한 대기업은 제주도에 골프장 하나씩을 모두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사업에 직접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에 먼저 허가부터 받아 놓다 보니 사업기한인 2년 안에 첫 삽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강 회장은 "골프장 사업을 할 만한 큰 회사들은 이미 모두 진출해 있었다"며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할 수도 없어 팔을 걷고 나섰다"고 회상했다. 이번 사업에 대한 가족과 그룹사 직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70이 다 된 나이에 고생길을 가려 하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강 회장은 "아내ㆍ아들ㆍ딸ㆍ형제ㆍ회사직원 등 반대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다"며 "하지만 강원도 탄광촌 출신으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살아온 삶을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사회를 위해 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로 특화
"성공을 위해서는 무조건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강 회장이 전자부품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늘 강조하는 부분이다. 강 회장은 이번 사업도 다른 휴양시설과는 철저한 차별화를 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 회장이 '스프링데일 골프&리조트'를 통해 추구하는 콘셉트는 바로 '자연주의'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자연 이미지를 살려 색다른 분위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골프장을 만들 때도 코스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편백나무를 그대로 두었다. 또 리조트 인테리어도 대리석 위주의 다른 리조트와 달리 돌ㆍ나무ㆍ흙 등 천연소재를 많이 사용했다. 건물도 될 수 있는 한 모가 안 나고 둥글둥글한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바다와 산이 한꺼번에 모두 보이는 경관과 휴양시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꾸몄다. 시골에 온 것처럼 푸근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쉼터로 꾸미기 위한 복안이다.
강 회장은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인테리어가 가장 좋은 인테리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며 "전자 분야에서 개발업무를 할 때도 늘 차별화를 잘해야 한다고 믿어왔는데 이번 '스프링데일 골프&리조트'에도 그 생각을 많이 담았다"고 밝혔다.
◇골프ㆍ승마ㆍ요트ㆍ공연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시설 목표
'스프링데일 골프&리조트'에 대한 강 회장의 꿈은 골프장과 리조트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이 며칠씩 묵으며 여러 가지를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시설을 만들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었다.
강 회장은 "최근 제주도 관광 인기가 높지만 막상 제주도에서 2~3일 정도 푹 쉴 수 있는 쉼터는 여전히 별로 없습니다. 골프장뿐 아니라 승마장ㆍ요트장ㆍ공연장까지 모두 지어 종합 휴양시설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역설했다.
승마장의 경우 이미 지난달 정부의 설립허가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산림에 길을 내야 하는 특성상 이에 대한 허가는 현재 추진 중이다. 강 회장은 본격적인 승마장 건립 허가까지 대체로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승마장과 함께 승마 고객의 숙박을 위한 승마텔도 설립할 예정이다.
승마장 완성 후에는 리조트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위미항'을 이용, 요트장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 또 서커스 등을 즐길 수 있는 1,200석 규모의 돔형 공연장을 건립하는 방안도 현재 기획 중이다.
강 회장은 "골프장이 이번 시설의 핵심이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제대로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게 최종 목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휴양시설의 규모가 생각보다 큰 것 같아 이번에는 투자비 조달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었다. 강 회장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1,000억원 정도 투자됐는데 그룹 계열사들이 모두 흑자경영을 하다 보니 그룹사 차원에서 대부분 투자가 이뤄졌다"며 "추가적인 투자는 리조트 분양이 이뤄지는 대로 조달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강 회장은 골프장 회원권 분양보다는 주로 리조트 분양을 통해 수익을 확보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년에 10일 정도 리조트 이용권을 분양하면 골프장 등 다른 시설은 싼 가격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콘도의 평수별로 가격대를 나눠 분양할 계획이다.
강 회장은 "골프장 회원권 분양은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방식으로 최근 많은 골프장들이 이를 무리하게 분양하고 건설사업 등에 투자했다가 어려움을 겪었다"며 "우리는 이보다는 리조트를 분양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 강 회장은 그는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 출신이다.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모두 태백에서 나왔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데 형제가 9남매나 되다 보니 대학 진학도 쉽지 만은 않았다. 지역의 한 탄광회사에서 일류 대학에 진학하면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부모님은 "결코 재수는 없다"며 "일류대에 진학 못하면 탄광에서 광부나 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강 회장은 "내가 처음 연세대 전기공학과에 진학했을 때 그야말로 마을에 경사가 났다"며 "탄광촌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다시 돌아봐도 기적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강 회장은 학생군사훈련단(ROTC) 3기로 장교 복무를 한 뒤 지난 1967년 당시 기준으로 대기업인 동신화학에 입사해 1970년 동남샤프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후 특유의 지적 호기심과 근면성으로 1972년 직장생활 5년 만에 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강 회장은 "총각 시절에는 직장생활을 하며 숙직 대행을 거의 도맡아 했다"며 "당시 야근 잔업을 하는 다른 직원들을 도와주다 보니 다방면의 기술을 익히게 돼 승진도 유독 빨랐다"고 회상했다. 동남샤프에서 승승장구하던 강 회장은 1976년 돌연 창업의 길로 돌아섰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전자제품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와 썼는데 이를 국산화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강 회장의 '국내 최초' 기술 개발 역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에는 나라에 외화가 별로 없을 때다 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품 국산화가 시급하다고 느꼈다"며 "국내에서는 못 만드는 부품 위주로 개발에 나섰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최근 취업과 창업을 고민하는 젊은이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관심 분야를 지나치게 편식하면 성공이 어렵다는 것. 그는 "집안도 좋지 않았고 선후배 관계를 이용한 것도 없었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뭐든지 가리지 않고 배우려 한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인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것을 강조했다. 강 회장은 "나는 투자를 쉬지 않고 하다 보니 사업이 잘 돼도 돈이 쌓여 있던 적이 없었다"며 "돈이란 것은 벌려고 욕심 내면 오히려 벌 수 없고 목표를 향해 정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력 ▦1943년 강원 태백 출생 ▦1961년 태백공업고등학교 졸업 ▦1965년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1967년 ROTC 소위 전역 ▦1967년 동신화학 입사 ▦1970년 동남샤프 입사 ▦1976년 성신하이텍(옛 성신화학) 설립 ▦1983년 동국전자 설립 ▦2003년 제주도 동국개발 설립 ▦2005년 한국기독실업인회 중앙회 부회장 ▦2005년 연세대학교 총동문회 상임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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