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향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욕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2주 안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1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날 이탈리아 언론인 라 레푸블리카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최근 통화에서 이같이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발언의 전후 맥락이나 진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텔레그래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신속대응군을 창설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온 직후 푸틴의 말이 알려진 것에 주목했다. 앞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육해공군을 포함한 4,000명가량의 신속대응군을 편성해 28개 회원국 어디든 48시간 내 배치가 가능하도록 순환 배치하는 내용의 '준비태세 실행계획'을 발표하고 4~5일 영국 웨일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에서 이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미·EU가 금융·에너지 섹터를 대상으로 하는 대러 추가 제재를 논의하고 있는 시점에서 불거진 푸틴의 '2주 점령' 발언은 더 이상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협박성 메시지라고 라 레푸블리카는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푸틴은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며 관여할 생각이 없다"며 외향적 중립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반군세력이 기존의 동부 거점을 넘어 남부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러시아군 병력 및 무기가 투입됐다는 서구권의 주장이 나온 직후부터 아슬아슬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 푸틴은 지난달 31일 자국의 한 TV 인터뷰에서 "(반군이 점거 중인) 우크라이나 동남부지역의 국가지위 부여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주권 및 영토권과 관련된 언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인터뷰에서 푸틴은 EU를 겨냥해 "러시아를 빼곤 누구도 겨울을 생각지 않는 것 같다"고 도발하기도 했다.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30%에 달하는 EU에 맞서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가스 공급 중단' 카드를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겨울에 단행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에 앞선 지난달 29일에는 러시아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거론하며 "(서구권은) 장난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특히 이와 관련해 발레리 헬레테이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계속되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비공식 채널을 통해 수차례 위협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이 같은 푸틴의 행보는 발언 수위와 강도를 철저히 계산한 것처럼 보인다. '외향적 중립→서구권 제재에 따른 보복 경고→우크라이나 주권 언급→우크라이나 점령 가능' 등 의도적으로 수위 및 강도를 높임으로써 이에 맞선 서구권 등 국제사회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위협을 넘어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입지를 최대한 강화하고 이를 통해 유럽을 견제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표면상의 공포감 조성과 달리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관련 협상에서 러시아 및 반군세력은 타협의 여지를 열어놓으면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러시아·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간의 이날 다자회의에 참석한 반군 대표는 "우리가 점령한 지역에 광범위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통합 우크라이나를 유지하는 내용의 평화협상을 진행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가 보도했다. 지금까지 '완전한 독립'을 요구해온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사태를 지금껏 주도해온 러시아와 이를 이행하고 있는 반군이 긴밀한 조율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CSM은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