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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크라테스와 금산법

금융산업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24조 개정안을 둘러싼 최근 정치권의 논란을 보면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물음표를 찍게 된다. 법이란 국민이 권한을 부여한 입법기관이 만든 이상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인데 맞는 말이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 검토’와 ‘사회적 합의’라는 전제조건에 주목하면 미흡한 금산법을 만들어놓고 법 제정 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벌칙을 논하고 있는 정치권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금산법 24조는 지난 97년 3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와 이를 통한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한 법으로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의 주식을 5% 이상 소유하지 못한다는 게 골자. 법안의 취지에는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가 있었느냐에는 의문이 간다. 이 법이 만들어진 지 3년 뒤인 2000년 2월에 제재조항이 없다는 점이 문제가 돼 과태료 등 제재조항을 담은 개정안이 통과됐고 그 개정안이 솜방망이라는 이유로 5%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정부안과 강제매각하자는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의 안이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법 제ㆍ개정 사이에 8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는데 이 같은 과정으로 봐 97년 법 제정 당시 그 이전에 삼성생명이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7.2%)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법 제정 당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8.6%로 현재 보유지분보다도 많았다. 법 제정 후 삼성카드가 취득한 에버랜드 지분(25.6%)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한 문제다. 정치권은 사실상 법 제정 후 8년이 지난 현재 제재방안을 논하면서 2000년 전에 취득한 에버랜드 지분에 대해 삼성에 “성의 있는 행동(?)을 보이라”며 공을 넘겼다. 소급입법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법 제정 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법 제정과 개정 사이에 존재하는 8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우리 국회의 입법 과정이 그만큼 신중하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법 제정 전에 불거질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전 검토가 전혀 안됐다고 보는 게 맞다. 악법도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말에 100%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소크라테스가 악법을 만든 입법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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