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공급과 고(高)분양가가 날선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지방 주택경기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경고가 나온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2년부터 늘기 시작한 지방 주택건설 실적은 2003년 ‘10ㆍ29 부동산대책’을 기점으로 급증을 거듭했다. 2002년 지방에 새로 지어진 주택의 비중은 전국 물량의 43.6%로 수도권에 못 미쳤지만 2004년 64.2%, 2005년 57.3%로 수도권을 크게 앞질렀다. 수도권 주택사업에 대한 규제가 크게 강화된데다 집 지을 땅마저 점차 고갈되자 건설업체들의 ‘지방 러시’가 봇물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광역시 등 지방 대도시의 경우 계약 뒤 1년 후에는 전매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중도금 무이자ㆍ후불제 등 업체들이 내건 ‘당근’에 투자수요가 몰리면서 분양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여기에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ㆍ기업도시로 이어지는 개발사업과 지역 차원의 신도시 건설 등 전국적인 개발 열풍도 공급과잉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그러나 수요는 계속 늘고 공급은 감소하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수요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결정적 한계가 있었다. 결국 2003~2004년의 활황세를 타고 대거 공급됐던 부산ㆍ대구 등지의 대단지들이 입주를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입주율이 좀체 오르지 않고 곳곳에 빈집이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부산의 미분양 아파트 수는 6개월간 감소세를 지속하다 3월 증가세로 반전한 뒤 4월 이후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동안 미분양 아파트가 감소했던 것도 지난해 ‘8ㆍ31 부동산종합대책’의 여파로 신규분양이 줄줄이 연기되면서 분양물량이 크게 줄었던 데 따른 일종의 ‘착시현상’으로 분석된다. 부산의 바통을 이어받아 신규분양이 집중됐던 대구 역시 대형 건설사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마저 악성 미분양의 적체를 털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심지어 초기 분양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단지까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공급과잉을 조절해줄 별다른 장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형 업체와 비교해 자금력, 브랜드 인지도, 사업 포트폴리오 등 모든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의 전문 주택건설 업체일수록 신규분양 사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공급과잉의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분양을 멈출 수 없는 ‘폭탄 돌리기’ 게임의 양상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도 불투명한 시장 전망을 이유로 신규 사업장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장들의 선심성 개발계획을 전면 재검토해 공급과잉을 줄이는 한편 수도권과 지방의 규제를 차별화해 수요를 살려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도 분양권 전매제한 등의 주택시장 규제가 이미 지역별로 차등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추가적인 규제완화나 대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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