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혼신(渾身)의 연기다. 말보다는 몸짓이다. 고독과 불안, 사랑과 자유, 슬픔과 환희…….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의 감정이 격렬하면서도 거친,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몸짓의 언어로 부활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피나'(PINA)는 춤의 역사를 바꾼 천재 무용가 피나 바우쉬(1940∼2009)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3D로 들여다본다. 피나 바우쉬는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탄츠테아터'를 만들어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격렬한 독무와 우아한 듀엣 등으로 녹여 무용을 근본적으로 재창조한 인물이다. 고전발레 혹은 현대 무용에서 지향해온 전통적인 동작을 답습 하는 데서 탈피한 것이다.
1985년 피나 바우쉬의 '카페뮐러'를 처음 접하고 충격과 감동에 휩싸인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은 피나의 매혹적 춤사위를 스크린에 옮겨오기로 결심한다. 2009년 세상을 등진 피나 바우쉬를 대신해 그가 이끌었던 부퍼탈 탄츠테아터 무용단이 아름다운 춤의 향연을 펼친다.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20개국을 대표하는 30여 명의 무용수로 이뤄진 무용단으로 1973년 창단 이래 40년 간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 무용수로는 96년 입단한 김나영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10여 분 가량 격정적인 독무를 선보인다.
영화는 피나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 형식이 아닌 그의 작품 세계를 그려내는데 방점을 찍는다. 피나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한'봄의 제전'에서는 왕성한 에너지가 가득한 봄의 생명력을 표현한다. 충격 흡수용 매트 대신 발목까지 잠기는 붉은 토탄 위에서 삶과 죽음, 질서와 무질서, 이성과 광기, 불안과 공포를 넘나드는 야만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부모님의 레스토랑에서 목격한 다양한 인간군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카페 뮐러'는 피나가 직접 출연한 몇 안 되는 그의 레퍼토리 중 하나다. 구슬픈 음악이 흐르며 삶의 공허와 소통의 부재 속에서도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하는 인간의 갈망과 외로움을 몸짓으로 말한다. '콘탁트호프'에서는 호기심과 사랑, 그리움과 좌절, 욕망과 착취 등 남녀 관계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보여준다. 피나 바우쉬 예술 세계의 절정은 레퍼토리 '보름달'에서 드러난다. 우뚝 솟은 바위와 무대를 둘로 가르며 흐르는 물줄기 사이에서 12명의 무용수들은 비바람을 맞으며 열정적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100% 실사로 구현된 3D 다큐멘터리 영화인만큼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무용수들의 목덜미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알알이 허공을 가르는 물방울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일언의 설명 없이 격정적이며 때로는 우아한 연기로 내면의 감정을 끌어내는 무용수들의 몸짓은 그야말로 숨을 멎게 만든다. 30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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