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위조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입을 맞춘 듯 "위조 사실을 몰랐고 지시하지도 않았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다 이번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권모(51) 과장이 자살을 기도해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24일 검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문서위조에 관여한 국정원 비밀요원 김모 과장(일명 김사장)이 체포되면서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본격화됐다.
이후 검찰은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 수사를 맡았던 국정원 대공수사팀 요원들과 문서위조 과정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권 과장과 김 과장을 비롯해 권 과장의 직속 상관으로 이번 증거조작 지시·보고 라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모 대공수사처장도 지난주 말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소환된 국정원 직원들이 관련 혐의를 부인하면서 검찰 수사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위조됐다고 지목한 문서 3건을 입수하는 데 모두 관여한 김 과장은 검찰 조사에서 "위조를 지시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김 과장의 상관인 이 처장 역시 문서위조를 지시하거나 위조문서 제출을 보고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협조자 김씨에 이어 권 과장이 자살을 기도한 점도 검찰 수사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권 과장이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고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로서는 당분간 수사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권 과장은 국정원에서 장기간 '블랙(신분을 밝히지 않는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등 27년간 대공업무만을 맡아 조직 내부에서도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특히 1996년 아랍계 필리핀 간첩인 '무하마드 깐수(한국명 정수일)' 사건, 2006년 일심회 사건, 2011년 왕재산 사건 등 굵직한 간첩 사건 수사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국정원 협조자 김씨가 위조된 중국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의 정황설명 문서를 입수하자 권 과장이 국정원 직원인 이인철 선양 교민담당 영사에게 이에 대한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권 과장의 상태가 호전되면 구속영장을 청구해 신병을 확보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병 확보 후에도 권 과장의 입을 쉽게 열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결국 국정원 위선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권 과장의 자살 시도와 국정원 직원들의 관련 혐의 부인으로 국정원 진술을 반박할 물증을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이번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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