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은 연간 8.6일의 휴가를 사용하는데 이는 세계 평균(20.5일)의 절반도 안 된다. 북미·남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25개국 가운데 한국이 꼴찌다. 근무시간은 가장 길다. 한국의 주당 근무시간은 45.1시간으로 평균(38.2시간)보다 7시간 가까이 길다. 역시 한국보다 많은 시간 일하는 나라는 없다.
캐슬린 탄 익스피디아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경영자(CEO)의 설명은 이렇다. "한국 직장인들은 주위의 눈치를 보며 휴가를 못 간다. 수십년 동안 이런 관행이 계속돼왔는데 책상에만 앉아 있는다고 생산성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휴가를 떠나고 이왕이면 시스템이 좋은 우리 회사를 이용해달라"고 한다.
한국인은 정말 일만 하는 국민성을 가졌나. 유럽(25.4일)이나 미국(13.8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도(15.5일)나 말레이시아(10.7일), 태국(12.1일)보다도 휴가 일수가 적다. 국내 기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한국인은 세계 평균에 비해 많이 일하고 적게 쉰다. 그리고 생산성도 떨어진다."
생산성이 떨어지는지 어떨지는 몰라도 노동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른 시각이 있다.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배운다. 좁고 자원도 없는 한반도에서는 오로지 우수한 인력만이 생존의 조건이다. 일하지 않을 수 없다. '휴가를 즐긴다'는 것은 사치였다.
과거 영광의 재연도 중요하다. 한국인은 조상들의 뛰어난 문화와 문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모든 것이 파괴됐다. 한국인들이 일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는 40대 이상이면 누구나 외우는 문구다.
휴가를 못 가게 하는 상사나 주위의 눈치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더 일할 것을 강요한다. 이는 '휴가를 내요, 여행을 떠나세요' 등의 캠페인으로 바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다시 부유해지면 자연스럽게 변화될 생활방식이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휴가나 여행이 개인적 삶의 향유가 아닌 일자리 확대와 소득증대, 경기 활성화로 연결되는 또 다른 산업정책이자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차원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쉽다. '관광'이라는 서비스 산업을 키우기 위해 지출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식의 인식 말이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단체행사나 야근·회식이 취소되면서 갑자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아이러니가 민망하다. 한국 경제도 많이 성장했고 이제 여유도 생겼다. 이제 휴가나 여행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인생을 즐기고 사람다운 생활을 한다는 차원에서다.
관광정책도 수요자로서의 국민 행복을 기준으로 봐야 할 때다. 휴가 일수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돈을 버는 사업이라는 시각보다 국민이 여가를 잘 즐기도록 하는 차원에서 관광정책이 추진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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