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연휴 내내 전국의 고속도로가 여행객들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들어보니 학생이 있는 집은 아이의 학원 수업을 빠질 수가 없어서, 일이 많은 직장인은 출근하느라 여행은커녕 집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들 한다. 좋은 성적과 성과를 위해, 즉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것이 어느새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 됐다. 이런저런 사정들로 집 밖에서 떠돌며 가족에 소홀해질 때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한 동네에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연인이 어른이 돼 자연스럽게 부부가 된다. 집을 멋지게 꾸미고 2세 계획도 세우지만 불행하게도 의사로부터 아이를 가지는 것이 어렵겠다는 진단을 받는다. 실의에 빠졌던 부부는 모험을 좋아하는 아내의 오랜 소원인 남미의 '파라다이스 폭포'를 보러 가는 여행을 약속하며 희망을 되찾는다. 그런데 돈이 모일 만하면 차가 고장 나거나 누군가 아프거나 집을 보수해야 하는 등 번번이 일이 생겨 여행계획이 자꾸만 미뤄진다. 어느새 백발이 된 남편이 드디어 비행기 표를 마련하지만, 그만 병에 걸린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홀로 지내던 남편은 78세가 되자 더 늦기 전에 꿈꾸던 여행을 하기로 하고 그 여행의 동반자로 아내와 평생을 함께했던 자신의 집을 택한다.
'업(UP)'이라는 짧은 제목을 가진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다. 수천개의 풍선이 높은 빌딩 사이에 낮게 숨어 있던 집을 하늘로 끌어올려 폭포를 향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장면은 너무나도 황홀하다. 특히 누구나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는, 삶의 여정이 담긴 짧은 프롤로그 때문에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뭉클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다.
아내와의 약속에서 시작됐지만 주변의 개발로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자 주인공은 집과 함께 떠나는 것을 택한다. 그에게 집은 평생을 같이 걸어온 동료이며 영혼의 안식처다. 이때의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 혹은 욕망의 성취나 재산과 계급의 상징이라는 추상적·사회적인 의미 이상의 복합적인 존재다.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근원적인 따뜻함과 편안함…. 그것은 가족과 함께 살며 때로는 부대끼고 때로는 위로받으며 쌓여온 시간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이 평생 집을 마련하고 집을 늘리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막상 집을 누리는 시간은 별로 없다. 이른 아침 각자 바쁘게 학교나 직장으로 떠나고 저녁엔 학원으로, 야근이나 회식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그게 삶을 제대로 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는 사이, 어렵게 마련한 집은 텅 빈 채 있다.
그런 '낭비'에 대해 우리는 왜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일까. '개미와 베짱이' 동화에 주눅이 들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남을 의식해 놓은 큰 TV와 소파 대신 꼭 필요한 가구만 있는 거실, 고급 가전을 갖추지 않고도 수시로 눈이 마주치며 손길이 닿는 적당한 주방, 각자 스마트폰을 갖고 숨어드는 침실이 아닌 편안한 잠자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집은 더 큰 집이나 더 비싼 집이 아니라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바로 지금 행복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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