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와 중국경기 둔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경제가 이번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옥수수와 콩 등 주요 곡물 값이 일제히 폭등하는가 하면 사료 값을 대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소를 내다파는 축산농가도 급증하고 있다.
15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직접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1.2%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발이 지속될 경우 '곡물 값 상승→식료품 값 인상→소비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가뭄에 따른 경제손실이 최대 500억달러(5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직간접적인 소비침체와 농업 주변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하면 손실액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미 농무부는 지난 11일 캘리포니아ㆍ인디애나ㆍ아칸소 등 26개주(州)에 걸쳐 1,000곳 이상의 카운티(행정구역의 일종)를 자연재해구역으로 선포했다. 재해구역 지정 역사상 최대 규모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옥수수를 주로 경작하는 캔자스ㆍ콜로라도ㆍ네브래스카ㆍ와이오밍ㆍ사우스다코타주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10일 현재 이들 지역 전체 면적의 84%가 '이상가뭄 구역'으로 지정됐다. 곡창지대로 꼽히는 중서부지방의 인디애나ㆍ일리노이ㆍ아이오와ㆍ미주리주에서도 63%가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곡물의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관측되면서 거래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시카고선물시장에서 12월 인도분 옥수수는 16일 전날보다 4.4% 급등한 부셸(25.4㎏)당 7.725달러에 마감했다. 옥수수 값은 6월 중순과 비교하면 53%나 뛰었다. 이밖에 밀과 콩 역시 6월 중순 가격보다 각각 41%, 21%씩 올랐다.
더 큰 문제는 곡물 값 상승이 식료품 가격 랠리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소ㆍ돼지ㆍ닭의 사료로 주로 이용되는 옥수수 값이 껑충 뛰면서 육류와 생선 가격이 올 들어 7.4% 올랐으며 올해 4.5%가 추가 인상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또한 농업용수 부족에 시달리는 일부 농가가 아예 경작을 포기하면서 농기계 판매업체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어니 고스 크레이턴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 가뭄이 미국 농촌을 넘어 전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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