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잠재 리스크 가운데 하나는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려 대기업이 관료주의화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20세기 상반기 동안 (자동차 산업의 메카이자) 혁신의 산실이었던 미국 디트로이트시가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몰락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미국 최대 보험사 가운데 하나인 뉴욕생명보험의 존 김(54·사진) 총괄 부회장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면 한국 대기업에서 젊은 인재들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중간 관리자는 관료화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신생 벤처들과는 대조적으로 최첨단 신사업이나 혁신 작업을 발 빠르게 주도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단기 리스크로는 일본의 엔화 가치 추락에 따른 한국의 수출 경쟁력 타격을 꼽았다. 뉴욕생명그룹 내 모든 부서와 자회사 투자를 총괄하는 김 부회장은 올해 가장 유망한 투자 지역으로 글로벌 경제 회복의 정박처(anchor)인 미국을 비롯해 중국·아세안(ASEAN)을 꼽았다. 자산운용 규모는 4,000억달러에 달한다.
그는 또 올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신흥시장이 혼란을 겪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올해 신흥시장 최대 리스크로 미국 인플레이션의 갑작스러운 급등을 꼽았다. 그 여파로 연준이 불가피하게 통화긴축에 가속도를 붙일 경우 신흥시장으로의 자본유입이 중단되고 변동성도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기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보이지만 때로 부진한 경제 지표도 나오는데.
△소비심리와 가계지출, 주택시장 개선 등에 힘입어 미 경제는 확실히 강해지고 있다. 실업률이 지난해 초 7%에서 5%대로 떨어지는 등 고용시장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휘발유 가격 하락만으로도 미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1.5%가량 늘어난다. 미국 내 50개주 가운데 (석유 생산 비중이 높은) 8개주는 유가하락의 역풍에 직면해 있지만 나머지 42개 주는 더 강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다.
-미 증시가 조정을 받을 때마다 하락장의 신호라는 분석이 나오는데.
△지금의 미 주식 가격은 합리적인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주식 수익률은 채권 등 다른 금융시장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증가와 비용하락으로 많은 기업들의 이익이 개선되는 중이다. 다만 에너지 기업들의 매출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도 16배에 이른다. 지난해 S&P500 지수가 13.7% 올랐지만 가장 많이 올랐던 5거래일을 제외하면 수익률은 3.2%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올해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겠지만 S&P500지수가 높은 한자릿수의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연준이 올해 중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는지.
△연준은 올해 두세 번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내년에도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 금리인상 때와는 달리 긴축 강도는 다소 점진적이고 신중한 속도가 될 것으로 본다. 인플레이션율이 아직 낮고 임금 상승 압력도 크지 않고 달러화가 정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연준은 통화긴축을 가속화해 리스크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또 시장이 대비하도록 포워드 가이던스를 유지할 것이다.
-연준의 금리인상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을 가능성은.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주요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 극단적이었던 통화정책의 정상화 작업은 환영해야만 하고 결국 미 경제가 회복 중이라는 신호이다. 다만 많은 투자가들이 올해 여름쯤 연준의 긴축을 예상하고 있지만 자본시장의 변동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물가가 갑작스럽게 급등한다면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을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현재 하락 중이며 앞으로 6~12개월간 '매우 완만한(fairly moderate)'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강달러 때문에 미 수출 등이 타격을 받는데 금리인하가 연기될 가능성은 있나.
△강달러는 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만 유럽·일본 등은 혜택을 받으면서 글로벌 경제 전체 측면에서는 상쇄되고 있다. 강달러 그 자체 때문에 연준이 통화정책의 경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달러 강세는 통화정책의 변수 가운데 하나다. 세계 경제가 지나치게 둔화되면서 미 경제가 충격을 받는데도 강달러가 더 진행되면 연준이 금리인상을 연기할 수도 있다.
-연준의 금리인상이 신흥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 연방기금금리(FF) 선물시장의 추이를 보면 시장은 올해 내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두 차례 올릴 것으로 이미 예상하고 있다. 또 많은 신흥국들이 외환보유액 증가, 경상수지 개선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한 완충막을 갖고 있다. 전망대로 글로벌 경제와 무역이 동시에 개선된다면 연준의 긴축으로 신흥국이 중태 사태를 겪지는 않을 것이다.
-신흥시장 가운데 투자하기에 가장 위험한 국가와 유망한 국가는.
△원자재 가격 하락과 강 달러의 파장이 신흥국별로 서로 다르다. 한국·중국·인도 등 원자재 순수입 국가는 펀더멘털이 개선되고 있다. 유망 투자 지역으로 중남미, 유럽 개발도상국보다는 중국·아세안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브라질·칠레·러시아 등 원자재 수출국 경제는 더 취약해지면서 통화 가치가 하락 중이다. 가장 취약한 몇몇 원유 생산국은 심각한 신용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루블화 가치가 지난해 거의 50%나 급락했고 지난해 1,515억달러의 자본이 순유출됐다. 석유가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베네수엘라는 재정수지가 균형을 맞추려면 유가가 배럴당 117달러가 돼야 한다. 올해 아마도 베네수엘라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을 것 같고 러시아는 더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은 확실히 글로벌 경제 회복에 취약 지역이다. 인플레이션율이 지난해 12월 -0.2%를 기록했고 올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유동성 공급은 유럽 신용시장과 은행, 특히 중소기업에 긍정적이다. 여러 리스크가 있지만 유가하락, 유로화 약세 지속, 미 경제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유럽 경제 회복을 도울 것이다.
-너무 낙관적인 게 아닌가.
△낙관적이 아니라 덜 비관적인 것이다. 분명히 유럽 시중은행 시스템은 취약하고 구조개혁 작업도 지연되고 있다. 유럽 자산의 밸류에이션은 비관적인 경제 전망 때문에 많이 하락해 있다. 하지만 유로존은 금융위기 이래 지난 4~5년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ECB는 통화부양책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신호를 내놓는 등 투자가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정치적·경제적 리더십을 잘 발휘하면서 역내 국가를 잘 이끌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몇 년 내 유럽 은행 시스템이 붕괴되는 사태가 올 것으로 보지 않는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그리스의 구제금융 재협상 논란이다.
△그리스는 유로존 경제의 1.8%에 불과해 그 자체로는 주요 위협 요인이 아니다. 하지만 유로화에서 드라크마화(그리스 옛 화폐)로 회귀하려는 논의가 부상하면 위기 전염 우려가 커질 수 있다. 또 그리스 부채 상환 일정이 위협받으면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유로화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지난 몇 년간 도달했던 채무 합의가 흔들릴 수 있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주변부 국가의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을 촉발할 수 있다.
-올해 한국경제를 어떻게 보는가.
△세계 무역이 회복되면 개방 경제, 수출 주도 국가가 가장 큰 혜택을 입을 것이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한국 제조업은 중국 성장 둔화 등에도 세계수출 시장을 방어할 수 있는 높은 경쟁력을 이미 증명했다. 또 한국은 최근 강달러와 원자재 가격 하락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은 재벌 중심의 성장전략에도 불구하고 혁신 속도는 정말로 인상적이다.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리스크는 무엇인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0엔까지 급락할 경우 (외환시장에 대한) 대규모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침체 국면에 빠질 것이다. 또 엔화·유로화 등 다른 교역국 통화에 비해 원화 가치가 상대적 강세를 띠면서 수입 물가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한국의 물가와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있어 한국은행이 경기부양 등을 위해 연내 기준금리를 낮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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