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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7017억 투자유치 전액 제주도에만 몰려
카지노 등 앵커시설 있어야 다른 지역도 활성화 가능
투자대상 아파트 등 포함하고 기준금액 5억도 낮춰야 효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동홍동·토평동 일원의 해발 200m 중산간 지역에 들어서자 완만한 구릉지에 최신식 콘도미니엄 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1조1,000억원을 투자해 짓고 있는 '제주 헬스케어타운'이다. 400가구 중 남측 단지(188가구)는 지난달 준공돼 다음달 입주 예정이고 북측 단지(212가구)는 오는 9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콘도의 3.3㎡ 분양가는 1,400만~1,500만원으로 공급면적 180~200㎡의 총 분양가가 7억5,000만~8억5,000만원에 이른다. 녹지그룹의 한 관계자는 "남측 단지는 현재 90%가 분양됐고 북측도 절반가량 팔렸다"며 "계약자의 95%가 투자이민제를 염두에 두고 구입한 중국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도입 5년째를 맞은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오랜 침체에 빠져 있는 국내 부동산 시장을 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각종 개발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해 2010년 도입한 투자이민제가 지역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투자이민제의 경우 개발이 필요한 전략 지역에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일정 부분 성과를 보이는 수준으로 제주도에 국한돼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투자대상 다양화와 기준금액 완화 등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주에 국한된 투자지역, 부산·인천 등지로 확대 움직임=부동산 투자이민제가 도입된 지 만 4년이었던 올 2월 말 현재 외국인 투자유치 실적은 1,076건, 7,017억원이다. 중국인이 1,065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홍콩과 몽골이 각 2명이다. 미국·캐나다·마카오·노르웨이·태국·이란·캄보디아 등이 각 1명씩이다.
그런데 이 투자유치 전액은 오로지 제주도에 집중된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 모두 제주도 내 부동산만을 매입했다. 따라서 제주도는 땅값이 크게 오르고 개발사업이 활발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투자유치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부동산 투자이민제를 시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제주도를 비롯해 부산·인천시와 강원·전남 등 5곳. 부산 해운대리조트와 동부산관광단지, 전남 여수 경도 해양관광단지, 강원 평창 알펜시아, 인천경제자유구역(영종·송도·청라지구) 등도 투자이민제를 시행 중이지만 투자유치 실적이 전무하다. 이는 지역별로 입지 경쟁력, 선호도에서 차이가 나는데다 투자유치를 이끌어낼 만한 핵심 앵커(anchor) 시설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외국인 카지노 허가가 난 영종도의 경우 복합리조트 개발이 가시화되면서 투자이민 문의가 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법무부 산하 투자이민센터의 한 관계자는 "3월 초만 해도 하루 1건에 불과했지만 영종도 카지노가 사전심사를 통과한 이달 18일 이후 상담건수가 20건을 넘었다"며 "인천에 호텔을 짓거나 미단시티 내 리조트 콘도를 매입하겠다는 문의가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2012년 5월 추가로 지정된 부산 해운대 역시 110층 규모의 분양형 호텔 건립이 확정돼 지난해 말 착공에 들어가면서 외국인 투자가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엘시티는 레지던스형 호텔 561실 전량을 중국인에게 분양할 계획이다.
이승주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본부장은 "투자이민제를 통해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누군가 선투자를 해서 투자할 상품이 있어야 한다"며 "그동안 앵커 시설이 없어 다들 투자를 주저했지만 영종도 카지노처럼 청라·송도 골프장 내 콘도미니엄이 들어서면 투자이민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대상에 주거시설 포함, 투자 기준금액 하향 요구도=부동산 투자이민제를 활성화하려면 투자대상을 보다 다양화하고 기준금액을 좀 더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투자대상은 콘도미니엄이나 호텔(일반숙박시설), 별장, 관광펜션 등 휴양시설로 한정돼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골프장 콘도미니엄으로 국한된다. 건설업계에서는 미분양 해소와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아파트 등 주택을 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인이 국내 주택을 구입한다고 해서 주택시장에 혼란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투자지역을 확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대상을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 기준금액을 하향 조정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강원·제주·전남과 부산 동부산관광단지는 기준금액이 5억원이지만 인천경제자유구역과 부산 해운대리조트는 7억원이다. 부산 해운대리조트는 레지던스형 호텔 1실당 분양가가 15억원이어서 걸림돌이 되지 않지만 인천의 경우 5억원 정도로 낮춰야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본부장은 "골프콘도는 몰라도 7억원짜리 관광펜션은 찾기 힘들다"며 "일단 금액을 낮추고 수요가 몰리면 그때 높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투자대상 확대와 금액조정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다소 부정적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관광·휴양지의 투자촉진을 위해 호텔·콘도미니엄 등을 매입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 부여라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라며 "주택까지 인센티브를 줘 판매를 늘리거나 투자를 촉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이민제=법무부 장관이 고시한 기준에 따라 부동산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F-2) 자격을 부여하고 투자상태를 5년간 유지하는 등 요건을 구비할 경우 영주(F-5) 자격을 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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