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대법원은 연세대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장기간 식물상태를 유지해 온 김할머니의 가족들이 치료 중단을 요구해온 사안에 대해 ‘호흡기를 제거하라’는 결정을 내리며 이 같은 판결문을 남겼다. 이후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본격화 됐고 2010년 ▦연명치료 중단 환자의 범위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의 범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 속 변화는 더디다. 2011년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가 펴낸 연명치료 중지 및 사전의료의향서 조사연구보고서 등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0년 2년 동안 병원급 이상 전체 의료기관의 연명치료 중지 고려 환자 수는 2,896명에 달했지만 이중 병원윤리위원회에서 올려져 치료 중단이 심의된 건은 19건(0.6%)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1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자문기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일 제2차 국가생명윤리위원회를 열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위원회는 이날 논의를 위해 9월부터 해당 안건의 법제화 필요성 등에 대한 국민 여론을 수렴해왔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가 당장의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문구가 갖는 의미에 대한 합의점조차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쟁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점이다.
우선 의식 없는 환자의 가족이 환자의 결정권을 대리할 수 있느냐는 부분에 대해 각계의 의견은 아직 엇갈리고 있다. 연명치료 중단을 고려하는 순간 환자의 의식이 불명료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합의는 중요하다.
또 일부 반대론자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외국과 달리 대부분의 치료비 부담이 환자 및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의 짐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한 환자들의 결정을 진정한 의미의 자기결정권으로 볼 수 있느냐고 말한다.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것에 대한 기준 역시 아직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정부는 2010년 사회적 합의체를 통해 일련의 합의를 도출하며 ‘말기 암환자’와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 가해지는 기계적 치료 행위를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규정했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말기 환자’라는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난치’와 ‘회복 불가능’은 전혀 다른 의미인데 이런 허술한 규정이 치료 가능한 환자들까지 병원 문밖으로 내쫓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런 모호함이 많기 때문에 더욱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남은경 경실련 팀장은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가를 정확하게 명시해 환자가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을 열어주면서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등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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