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을 도입하겠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공약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내년부터 4년간 수십조원의 추가비용이 드는데다 대기업 회장 등 부자에게 기초연금을 주기 위해 세금ㆍ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는 걸 반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제도 운영에 너무 많은 돈이 드는 데 비해 노인빈곤 해소 효과는 별로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소득ㆍ재산 하위 70% 노인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소득(A값)의 5%(올해 9만7,100원)를 주는 기초노령연금 대신 기초연금을 도입하고 국민연금과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오는 2017년까지 노인의 80~90%에게 월 18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주겠다고 치고 나오자 589만명에 이르는 표를 의식해 급가속 페달을 밟은 셈이다.
수혜자 입장에선 정부가 기초노령연금이든 기초연금이든 많이 주면 좋은 일이다. 관건은 정부와 국민이 감당할 수 있고 형평성과 원칙에 맞느냐 여부다. 기초노령연금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의 역사가 짧고(지난 1988년 도입) 국민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상의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아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도입됐다. 지원대상은 65세 이상 노인의 70% 수준인데 신청ㆍ선정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지난해 월평균 386만명(67%), 올해에는 405만명(66%)이 탈 것으로 예상된다. 1인당 월 지급액이 적어 빈곤 완화 효과는 크지 않지만 수급자가 많아 올해 정부ㆍ지방자치단체 부담액이 4조3,1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박 당선인이 TV에서 말한 원안대로 하면 2017년에는 17조원이 들어간다.
기초연금은 새누리당은 4년간 약 20조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39조원이 추가로 든다고 추산할 정도로 '돈 먹는 하마'다. 올해 전체 복지예산이 100조원이니 엄청난 규모다. 소요재원을 줄여보려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새누리당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디어들도 신통치 않다. 국민연금보다 훨씬 후한 연금을 받는 공무원ㆍ교원ㆍ군인 출신 노인들에게는 기초연금을 주지 않을 것이라거나 국민연금을 타는 상위 30%에게는 하위 70%에게 주는 기초연금액의 절반 이하만 준다는 것 등인데 큰 효과를 거두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잔머리를 잔뜩 굴려 국민연금 가입자가 향후 내는 보험료를 세금과 함께 기초연금재원으로 쓰는 방안까지 등장했다. 새누리당에서 일단 부인하긴 했지만 여전히 '비장의 카드'로 남겨두고 있는 눈치다. 이는 가입자들이 노후에 쓸 돈을 훔쳐가겠다는 위험한 발상으로 위헌소지가 농후하다.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는 성실가입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다. 이쯤 되면 가난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기초연금을 도입한다는 명분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빈곤율은 2010년 47.1%(100가구 중 47가구가 중위소득의 50% 미만)로 전체 인구 빈곤율(13.8%)의 3.4배나 되며 갈수록 사정이 악화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자를 줄이되 지급액을 늘려 노후빈곤 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자고 주장해왔다. 2001년부터 기초연금 도입을 권고해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해 '한국경제보고서'에서 기존 주장을 백지화하고 이에 동조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박 당선인과 인수위도 기초연금 도입 공약에 매몰되지 말고 기초노령연금을 손질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지급대상이 많다는 논란이 있지만 65세 이상 노인의 70%에게 A값의 5%를 주는 기초노령연금을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더 빈곤한 30~40%에게만 A값의 10%(약 20만원)를 주는 방안이 그 예다.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다. 박 당선인이 말했듯이 새 정부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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