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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네 탓만 하는 건설업계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최근 기자가 만난 건설업계 관계자들이 각기 다른 사건을 두고 여러 차례 반복했던 말이다. 깊어진 부동산 침체의 골 속에 실패한 사업장이 속출하면서 손해를 책임져야 할 순간이 다가오자 각 건설사가 책임 공방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내 한 아파트 분양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 시공사는 "시행사가 사업을 더디게 진행하면서 분양 타이밍을 놓쳤고 땅값 이자만으로 수십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시행사의 잘못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시행사는 시공사의 낮은 인지도와 분양대행사의 홍보 부족 문제를 탓한다. 분양대행사는 수요를 무시하고 대형 아파트 위주로 사업을 추진한 시행사와 시공사가 문제라고 항변한다.

요즘 건설업체에서 가장 바쁜 부서 중 한 곳은 법무팀이다. 분양 시장에서 흥행 실패가 잇따르자 해결 방안 모색보다는 책임 소재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 대비해 법무법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시행사-시공사 갈등에 그치지 않고 컨소시엄으로 추진된 대규모 사업장 시공사 간에도 발생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건설업계의 집안싸움은 개별 건설사와 협회 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수십개의 건설업체가 경영난으로 협회 회비를 체납하기에 이르렀고 참다 못한 협회가 회원사를 상대로 회비 납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협회는 회비로 운영되는 협회에 운영비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대형 건설사까지도 이 같은 침체기 속에서 소위 "협회가 해준 게 뭐 있느냐"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무리 어려워졌다지만 이제 건설업계에 서로 협력하려는 동업자 의식은 사라져버린 듯한 분위기다.

한국 건설산업은 때로 '담합'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협력'을 통해 성장해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그 어느 업종보다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며 끈끈한 동업자 의식을 키워왔던 것이 건설업계의 전통이다.

지금 건설업계의 어려움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위기에 대응할 아무런 준비를 해놓지 않은 모두의 잘못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쉬운 말이 있듯 남 탓할 시간에 모두 머리를 맞대고 타결책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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