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여자들이 '앓이'를 한 영화가 있다. '아저씨'란 영화다. 지난 2010년에 개봉된 이 영화를 기자는 2년이나 지난 최근에야 TV를 통해 봤다. 이런 저런 전문가들의 평을 차치하고 여자들이 앓을 만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아저씨'가 이웃집 아이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다시 나오기 전 은둔의 장소는 전당포다. 영화 속 전당포는 어둡고 침침한 공간이다.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한꺼번에 잃고 세상과 담을 쌓은 주인공을 표현하는 메타포다.
하지만 실제의 전당포는 1970~1980년대 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높기만 한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서민들은 급전이 필요할 때면 결혼 패물을 들고 전당포로 뛰어갔고 대학시절 젊은 객기로 마신 술값을 치르기 위해 입학 기념으로 선물 받은 시계를 맡겼던 곳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한때 종로 등 도심에서 번성했던 전당포도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지만 요즘 강남에는 옛 전당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명품 전당포'라는 것도 성업 중이다. 전당포도 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고나 할까.
전당(典當)이란 채권의 담보로 채무자가 유가물을 채권자에게 유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당포는 이 유가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장소인 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전당이라는 용어를 처음 발견할 수 있는 문헌은 고려사 식화편 차대조라고 하며 근대적ㆍ전업적 전당업이 발생한 것은 조선 말기 이후의 일이다.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이 사용한 명칭으로 '질옥(質屋)'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전당포와 같은 의미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인 질옥업의 목적은 이자 취득이 아닌 토지 취득이 목적이었다.
담보물건에 한해 책임 묻는 전당포
전당업의 법적 근거는 1961년에 도입한 '전당포영업법'이다. 이 법에는 물품ㆍ유가증권 외에 민법이 규정한 질권을 취득해 일정기간 채권을 담보하고 이를 변제받지 못할 때 당해 전당물로 변제에 충당하는 대부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전당포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돈을 빌린 사람은 전당포에 저당 잡힌 담보물까지만 변제의 책임을 지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당포 영업의 핵심은 '감정'이다. 저당 잡힌 물건이 유일한 채권 확보 수단이다 보니 자칫 담보물의 가치를 잘못 판단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탓이다. 1만원짜리 가치밖에 안되는 짝퉁 시계의 가치를 5만원으로 판단하고 돈을 빌려줬다면 그에 따른 손실은 어디까지나 전당포 몫이란 얘기다.
한데 요즘 금융권이 도대체 전당포보다 나은 게 무엇일까. 몇 차례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기자는 은행 창구에서 담보의 가치를 참 쉽게도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짧게는 2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대출을 해주면서 정작 해당 주택의 집값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따져보지도 않는다. 그나마 현재 시점의 담보물의 가치마저도 그저 정보제공업체 등이 포털에서 제공하는 시세를 참고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주먹구구식 대출이 이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채무자의 책임이 담보물 제공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돈을 빌리면 담보물의 가치와 관계없이 어떻게든 그 돈을 갚을 때까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채무자의 굴레다.
무책임한 대출관행 부끄럽지 않나
이렇다 보니 심지어 집값이 계속 하락하고 있음에도 일부 제2금융권은 여전히 집값의 80~90%까지 후순위 담보대출해주는 관행도 여전하다.
최근 금융당국은 주택 담보대출 때 같은 단지 내 같은 주택형의 아파트라도 동ㆍ층ㆍ향이나 조망권에 따라 담보가치를 차등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건 또 얼마나 우스운 얘긴가. 많게는 수억원의 돈을 빌려주면서 너무 당연히 따져야 할 가치를 지금까지 전혀 따져보지도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참 은행하기 좋은 나라란 생각이 든다. 주택 사업에 투자란 이름으로 돈을 댔다 사업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모든 책임을 건설사에 떠넘기면 되고 집을 담보로 개인에게 돈을 빌려줬다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걱정할 게 없으니 말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외치기 전에 사라져가는 전당포를 수소문해 찾아가 한 수 배우는 게 먼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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