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완전 개방된 쌀 시장을 두고 국회의원들이 쌀과 잡곡을 ㎏ 단위로 재포장을 못하게 하거나 고액 연봉 직원을 둔 관세합의 기구를 만들게 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농가 보호를 위해 고액의 쌀 관세율을 관철하고 쌀 원산지 위반을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자칫하다가는 멀쩡한 시장까지 고사시키는 실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15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국회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회는 최근 '쌀 관세율 결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집중 논의를 했다.
법안은 김승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 한 것으로 국제 협상에서 정부가 쌀 관세율과 관련된 협상을 할 때 국회에 계획과 진행사항을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쌀 관세율(513%)이 확정됐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다른 나라와 통상 협상을 할 때 일일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쌀과 관련된 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제 협정을 맺을 때 협상과 체결은 정부가 하고 비준 동의는 국회가 하게 돼 있는데도 상정된 법은 정부 권한을 무시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관세율 협의를 위해 연봉 7,000만원이 넘는 쌀 관세합의기구 사무국도 두도록 한 것도 과도한 입법이다. 사무국에는 연봉 7,600만원의 4급 서기관 1명과 5,800만원 사무관 2명, 4,900만원 주무관 2명 등 5명의 공무원 대우 직원을 채용하게 했다. 직원들의 월급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통상업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농식품부가 부담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고액은 연봉은 둘째치고 채용 과정도 투명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자칫하다가는 국회의원들의 인사청탁 창구로 이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묘한 법은 이뿐만 아니다. 국회는 수입쌀은 물론 국내산 쌀도 혼합 및 재포장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것인데 수입 쌀을 수입한 후 포장을 뜯고 국내산 쌀과 혼합해 파는 행위 등 원산지 표시 위반을 막기 위한 내용이다. 하지만 수입쌀만 혼합을 금지하면 수입산 차별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 된다. 이에 따라 개정안에는 국내산 쌀의 재포장도 금지하는 것을 포함했다. 문제는 국내 쌀도 뜯지 못하면 국내 도매업자나 대형마트·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20㎏ 이상 쌀이나 잡곡을 사서 개별 단위인 3㎏나 5㎏ 단위로 다시 포장 판매하는 전국 소분업체 800여곳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점이다. 원산지 위반 단속이라는 명분은 좋지만 국내 소분업체가 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개정안은 최근 1인 가구의 증가로 3㎏이나 5㎏ 규모의 잡곡 쌀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흐름과 역행한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쌀 시장 개방에 따라 농가를 보호할 필요는 있지만 필요 이상의 과잉 규제를 하면 국내 쌀 시장이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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