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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3월10일] 일본 진주& 쿠웨이트
입력2006-03-09 18:11:47
수정
2006.03.09 18:11:47
[오늘의 경제소사/3월10일] 일본 진주& 쿠웨이트
권홍우 편집위원
쿠웨이트 경제가 일본인 때문에 거덜날 뻔했다. 일본의 진주양식 성공으로 외화벌이 수단이던 천연진주가 설자리를 잃었기 때문. 1930년대의 일이다. 쿠웨이트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간 주인공은 미키모토 고키치(御木本幸吉ㆍ1858. 3. 10~1954. 9. 21).
가난한 우동집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진주양식에 나선 것은 32세 무렵. 고생 끝에 마련한 쌀가게를 처분, 외딴 섬에 들어가 실패를 거듭한 지 4년 만인 1893년 미키모토는 반원형 진주를 만들어냈다. 1905년에는 원형 진주를 선보였다. ‘생명’에 대한 최초의 특허도 인정받았다.
세계는 그의 ‘연금술’에 경악했다. 보석의 대량 생산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란도 일었다. 런던과 파리의 보석상들은 ‘교묘한 모조품’이라며 양식진주를 오랫동안 배격했다. 불신과 기득권의 벽을 무너뜨린 것은 철저한 품질관리. 생산량의 90%를 불태워버리는 미키모토의 고급화 전략과 ‘천연진주와 양식진주는 동일하다’는 학계의 연구가 맞물려 일본은 진주 수출대국으로 떠올랐다. 왕족의 전유물이던 진주는 만인의 보석이 됐다.
누구보다 다급해진 것은 쿠웨이트. 가진 것이라고는 사막과 해안뿐인 조그만 토후국은 주력 산업인 천연진주 수출 격감과 줄도산을 겪었다. 배는 방치되고 잠수부는 유목생활로 돌아갔다. 대안으로 택한 게 자원개발. 5년여 탐사 끝에 1938년 2월 말 버간 유전이 터지고 위기도 날아갔다. 일본산 양식진주가 석유개발을 자극한 셈이다.
검은 황금이 준 풍요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원고갈 위기 탓이다. 인류는 과연 석탄시대로 돌아갈까. 희망이 없지는 않다. 역경을 딛고 보석을 창조한 미키모토 같은 의지가 있다면. 땅속 자원보다 더 값진 신의 선물은 인간 바로 그 자체다.
입력시간 : 2006/03/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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