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창을 통해 들여다본 미래 사회는 꽤 우울했다. 올리버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는 기분 좋은 제목과 달리 과학이 창조한 미래의 암울함을 담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역시 유쾌하지는 않다. 인간을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존재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자아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또 어떤가. 인간은 스스로 창조한 복제인간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인종청소하듯이 복제인간을 일일이 찾아내 제거해야 했다. 어찌 보면 예술은 논리와 법칙을 앞세우는 과학에 선천적인 알레르기 증세를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예술에 담긴 우울한 미래의 전주곡들은 복거일의 첫 과학 소설집 앞에서는 일시정지된다. ‘애틋함의 로마’는 그 동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미래에 따스한 햇볕을 비추는 책이다. 로봇, 복제인간 등 다양한 개체가 존재하는 미래에도 여전히 인간성은 살아 있고 사랑, 연민, 희생은 핵심 덕목이다. 표제작 ‘애뜻함의 로마’는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으로 복제된 인간과 맞닥뜨린 마이크의 이야기다. 정부의 실수로 죽지도 않은 자신의 복제인간이 만들어졌고, 그가 원본인 마이크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과 모든 면에서 똑같았다. 심지어 사랑에서도 말이다. 복제인간 마이크는 젊은 시절 마이크의 연인 소니아와 똑같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이크는 두 사람을 통해 자신이 못다 이룬 사랑의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복제인간 마이크는 젊은 시절 그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복제인간도 역시 마이크였던 것이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 얼굴에 어린 꽃’, ‘내 몸의 파편들이 흩어진 길 따라’ 등 다른 6편의 단편들도 이런 애틋함이 살아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소설들이다. 책 후반부에 수록된 2편의 단편소설은 평소 현실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해온 저자의 평론가적 면모가 담겼다. ‘거부한 자’는 예수를 구세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 예수를 배신했다는 유다의 이야기이고, ‘정의의 문제’에서는 법보다 떼쓰기가 앞서고, 헌법보다 국민정서가 힘을 발휘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넌지시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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