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20년을 맞는 한중 관계의 현실은 이처럼 결코 녹록지 않다. 중국의 주요 교역 대상국 중 한국이 4위로 올라섰지만 정치나 외교 문제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경제 분야의 협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제협력에서는 중국이 몸이 달았다. 농수산물 등 민감 품목에 신중한 우리와 달리 중국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이번 이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결판을 내려는 분위기다. 중국답게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대한 관계를 유지하는 셈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를 '수근유원(雖近猶遠) 이교난심(易交難深)'이라고 표현한다. 가깝지만 아직 멀었고 교류하기는 쉽지만 깊어지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제2의 내수시장을 넘어 공생관계로=20년 동안 한국과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상호의존도를 높였다. 한중 교역은 수교 당시보다 31배나 늘었고 우리 기업의 중국 투자 역시 16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제1 교역 대상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런 탓에 국내 기업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중 관계에 민감하다. 여러 방면에서 표출되는 한중 갈등이 잘못 다뤄지면 자칫 양국 무역 갈등으로 옮겨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 전략은 초기 수교 당시와도 크게 변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한국의 중간재를 이용한 가공시장으로 여겼던 우리 기업은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해 중국 현지에 판매하는 (중국) 내수시장 전략으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중국 시장 진출 전략에 또 한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개발ㆍ생산ㆍ판매 모든 기업활동을 중국 기업과 공동으로 진행해 같이 발전할 수 있는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일방이 이용하는 관계가 아닌 공생관계인 셈이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답게 중국의 한국 시장 진출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 등에서 중국 자본의 부동산 취득도 이색 뉴스가 아니다. 수교 이후 한국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FDI)는 495억달러(2011년 11월 말 현재)지만 중국의 한국 FDI는 누적으로도 약 33억달러(2011년 9월 누계)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중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빠르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FDI가 연간 기준으로 처음 6억달러를 기록했다.
◇김정일 사후, 한중관계=경제적으로 상호의존도가 높아졌지만 정치ㆍ외교에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없었다.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우리 정부가 미국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북한이라는 변수는 한중관계를 가깝지만 먼 관계로 만든다.
천안함ㆍ연평도 이후 중국이 보인 자세와 함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보여준 중국의 외교적 태도와 한중간의 소통은 실망스럽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수뇌부 9명이 일제히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시하면서도 관련 정세 변화에 대한 '논의'를 원하는 이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외교적인 결례를 넘어 대북 편향을 통한 실리 추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다 반복되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해서도 자국의 이익만 취하는 태도는 우리 국민의 중국에 대한 감정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9일 방중길에 오르는 이 대통령에게 한중관계의 정치외교적 문제는 어렵다. 풀어야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이규형 주중 대사는 "김 위원장 사망 직후 이뤄지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오갈 것"이라며 "우리는 지속적으로 (중국의 북한 편들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교 20주년, 새로운 한중관계 모색의 계기=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수교 20주년 기념사업과 함께 양국의 공동 발전을 위한 전략이 논의된다. 특히 수교 20주년 기념사업도 확정한다.
우리 정부는 한중 수교 20년을 맞아 중국 외교의 목표를 '정치적 가치체계 변화 유도가 아닌 한중 관계의 지속 발전'으로 정했다. 체제가 다른 데서 오는 정치적 차이는 인정하되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양국 정부는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올해를 '2012년 한중 우호교류의 해'로 정했다. 오는 3월26일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전후 이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교류의 해 개막식을 열고 각종 학술대외, 해군사관학교 순양함 중국 방문, 관광 인사 교류, 사진전, 영화제, 도서전 등 45개의 행사가 열린다. 지방 정부나 민간이 여는 행사도 다채롭게 펼쳐지는 가운데 우호교류의 해 폐막식은 하반기 베이징에서 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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