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55000' 본격 도입… 사회·산업자산 효율·안전성 높일 것
도로·철도·공장 설계서 폐기까지 체계화… 사고 예방·시설수명 연장
산업표준, 제조업 위주 벗어나 아이디어·환경 등 무형가치로 넓혀야
국제표준은 '게임의 룰'… 기업 해외진출 때 시장 선점 무기로 활용을
"지난 1960~197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는 제조업이 주가 된 만큼 균일한 품질이 중요한 요소였지만 21세기 창조경제 시대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승패를 가릅니다. 산업표준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제조업 편중에서 벗어나 무형의 가치, 예컨대 기업가 정신, 사회적 책임, 혁신적 아이디어, 국민의 행복을 더욱 진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해 9월 한국표준협회 지휘봉을 맡게 된 백수현(사진) 회장은 3일 서울 역삼동 본사 집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표준협회의 존재 이유를 설파하며 말문을 열었다. "1962년 3월 설립 당시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원년이었습니다. 우리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5달러 수준에 그쳤고요. 정부는 산업표준화법을 마련해 각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균일한 품질을 갖추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거예요. 그것이 표준협회의 태생적 본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반세기가 넘게 지나면서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는 만큼 표준의 적용도 기존 상품에서 더 나아가 에너지, 환경, 사회적 책임, 안전 등으로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 표준협회는 기업 경영 및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경영기법과 품질관리기법, 인적자원 개발, 산업표준 보급 등 다양한 지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표준·품질·인증·교육 등 분야별 포트폴리오를 통해 산업현장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 분야에서도 표준의 중요성을 알고 적극 활용해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백 회장은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표준은 시장에 적용되는 '게임의 룰'과 같은 것으로 선점할수록 유리하다"며 "특히 기술표준 선점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 산업에서 표준 선점은 절대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가장 유명한 표준전쟁은 바로 소니의 베타 방식과 마쓰시다의 VHS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타 방식을 고집한 소니는 마쓰시다의 VHS가 표준이 되면서 비디오 시장을 내줬지요. 이동통신의 강자였던 모토로라 역시 유럽방식(GSM)이 사실상 표준으로 채택되면서 노키아에 선두 자리를 내주었지요. 최근에는 LTE 통신기술, 사물인터넷(IoT) 관련 기술표준을 선점하려는 기업 간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표준전쟁은 단순히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게 백 회장의 견해다. 앞서 가는 자들이 기득권을 반영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고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무기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국제기구에서 인정한 국제표준을 우리 표준에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국가경쟁력 수준을 말해준다"면서 "국제표준은 글로벌 시장에 적용되는 일종의 '게임의 룰'인 만큼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룰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며 더 확실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룰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런 차원에서 중소기업이 표준을 활용하는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이 표준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해외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거나 시장 자체를 선점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 신제품에 맞춰 국제표준을 제정하거나 경쟁사보다 자사 제품의 품질이 좋은 경우에는 국제표준 기준 자체를 상향해 개정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시경 세척기와 소독기를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한 중소기업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자사 제품의 성능이 타사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는 유럽의 국제표준화 회의에 참석해 기준 상향을 요청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이듬해 매출이 40% 이상 늘었다. 이 회사가 부담한 비용은 국제표준화 회의 참석을 위해 지출한 출장비 6,000유로가 전부였다. 국내에도 중견·중소기업의 국제표준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표준협회 산하에 글로벌표준화지원센터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표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탓에 아직까지는 이용실적이 저조한 상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표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백 교수는 신뢰와 편의, 안전과 행복을 주요 키워드로 꼽았다.
그는 "소비자에게 표준은 실생활에서 편리하게 상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해당 제품을 믿고 구매해도 좋다는 신뢰를 심어준다"면서 "KS인증을 받은 전구나 유리창, 로하스 인증을 받은 달걀이나 우유에 손이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핸드폰 충전기로 다양한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도록 '호환성'을 높여준 사례나 주유소 주유 건(gun)처럼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킨 것도 표준이다. 또 비상구 그림 등 픽토그램(pictogram)처럼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하면서 소비자에게 편의와 안전을 제공하는 것도 표준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는 "국민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지키기로 합의한 약속이 바로 표준"이라며 "일정 정도의 비용이 드는 만큼 기업으로서는 규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국민에게는 생활의 편의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만큼 결과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도구"라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는 '안전'을 테마로 주요 사업을 펼칠 방침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중요 화두로 떠오른 만큼 사회적 자산과 산업체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엔지니어링 자산관리(Engineering Asset Management)'에 초점을 맞춘 ISO55000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자산관리는 자산의 설계에서 취득·운영·정비, 그리고 폐기까지 전 과정을 체계화하는 것으로 사회기반자산은 생활이나 생산의 기반이 되는 도로·철도·공항·학교·병원 등 공공시설이고 산업자산은 기업의 생산활동에 사용되는 공장과 설비가 해당된다.
백 회장은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공공 인프라 자산관리 전략을 개발,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하고 실무 매뉴얼을 작성하면서 자산관리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반 산업설비에도 자산관리 개념이 적용되는 등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격을 만들려는 각국의 공동노력이 펼쳐져 지난해 1월 자산관리 국제표준체계인 ISO55000 시리즈가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회 인프라를 자산으로 간주하지도 않을뿐더러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백 회장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2013년 불산 누출사고, 그리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사고들은 산업 자산관리에 대한 체계적 전략이나 운영관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 비극"이라며 "이번에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ISO55000을 도입하는 것을 계기로 아시아 자산관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표준협회는 인증에 필수적인 인증회규를 개발하는 한편 심사원과 운영자 등 인적자원 양성에도 나섰다. 백 회장은 "이르면 오는 3·4분기부터 기업들에 ISO55000 인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이를 활용하면 사회기반시설이나 산업시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설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자산관리 분야에 대한 체계적이면서도 세밀한 연구를 위해 오는 8일 자산관리협회를 창립할 계획이다.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던 이필상 유한재단 이사장을 학회장으로 영입하는 한편 인프라·에너지·제조·학술·지원 등 5개의 분과를 두기로 했다. 백 회장은 "대한민국 산업자산관리에 대한 통합된 학문적 연구와 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공공 및 민간 산업 분야의 자산관리표준을 수립해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국가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He is… △1949년 인천 △1972년 한양대 전기공학과 △1974년 한양대 전기공학 석사 △1983년 한양대 전기공학 박사 △1977년 동국대 공과대학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2009년 대한전기협회 부회장 △2009년 제38대 대한전기학회 회장 △2013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적합성정책위원회(CAB) 이사 △2014년 동국대 전자전기공학부 석좌교수 △2014년 9월~ 한국표준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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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오철수 성장기업부장(부국장 대우)csoh@sed.co.kr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