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중소기업을 만들어 사업을 영위하려는 중견기업에 대해서도 감독을 강화하겠습니다"
유장희(71ㆍ사진) 동반성장위원장은 1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법은 어떻게든 피해나갈 수 있더라도 체감도 조사는 시장에서 알기 마련"이라며 "소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중견기업 문제에도 접근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번에 56개 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했는데 다음 단계는 우수 1차 협력업체를 2ㆍ3차 협력업체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관한 동반성장지수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오는 하반기 조사를 시작해 내년 상반기 중 발표할 예정"이라며 "조만간 1차 협력업체에 공문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에는 조사 대상이었던 기업들이 평가 대상으로 바뀌는 것"이라며 "메시지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곳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대ㆍ중소기업만이 아니라 그간 사각지대에 있던 중견ㆍ중소기업 간에도 동반성장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취임 후 첫 언론매체와의 공식 인터뷰에서 유 위원장은 동반성장에 대한 인식을 비롯해 앞으로 동반위를 꾸려나갈 방향 등에 대해 조목조목 자신 있게 설파했다. 다만 그는 "동반성장은 대한민국의 지속성장을 위해 앞으로 꾸준히 끌어가야 할 '사회경제적 문화'인데 구상하는 일을 모두 하기에는 인력과 예산 제약이 크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담=이규진 성장기업부장 sky@sed.co.kr
양극화 표현은 생소하고 과장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양극화에 대해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대기업만 잘되고 있어 양극화가 발생했다'는 명제는 틀렸고 지난 20년간 생산성과 부가가치 증가율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낫다는 분석이다.
경제양극화에 대한 인식을 묻기 위해 KDI 보고서 이야기를 꺼내자 유 위원장은 "격차가 벌어졌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경제학 측면에서도 양극화라는 단어는 생소하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양극화란 한쪽은 잘되는 반면 다른 쪽은 극도로 나빠지는 상황을 뜻하는데 현상황이 이와 맞지 않는다는 견해다. 그는 "양극화라면 중소기업이 죽을 지경이어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겠지만 새로운 사업을 일으켜 해보려는 현재의 창업 분위기를 보면 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에 대해서는 '21세기 생산성은 전략적 제휴에서 나온다'는 말로 설명했다. 21세기 경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대기업도 많이 나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ㆍ중소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상호 도움을 받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유 위원장은 아직 건설적인 기업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기업이 중기에 경영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 중기와 동반해 키워나가는 풍토는 아직 강하게 정착되지 않아 동반위가 더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유 위원장은 또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철학과 별개로 대기업 중간간부들이 실적을 위해 단가 후려치기 등을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이번 동반성장지수 발표를 통해 그간 간과했던 경영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게 됐다"고 말을 이었다.
동반지수 하위기업에 무분별 비판 지양해야
"선진국들은 학교에서 능력 있고 장래성이 뛰어난 학생들을 모아 우수반을 만듭니다. 그 안에서도 경쟁이 필요하므로 A부터 D까지 학점을 줍니다. 56개 우수기업을 선정해 동반성장지수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0일 동반성장지수 결과 발표 브리핑 자리에서 유 위원장은 문득 '우수반' 이야기를 꺼냈다. '기업 줄세우기'라는 비판에 대한 해명 차원이다.
이날도 그는 "하위등급 기업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지양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평가 대상 56개 기업은 각 업종에서 그동안 협력기업과의 동반성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해 개선등급으로 평가됐더라도 아직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기업에 비해 월등히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설명이다.
유 위원장은 "동반성장지수를 앞세워 기업들을 줄세우고 압박하려는 것도 아니고 기업에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기업과 자발적으로 약속한 내용을 점검하고 궁극적으로 동반성장 문화가 산업계 저변으로 확산되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추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지수 평가과정을 살펴보면서 기업들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는 점을 알게 됐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등급의 차이와 별개로 모든 지수평가 대상 기업들이 진지한 태도로 적극 대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성과공유제, 용어에 매여서는 안 돼
성과공유제와 협력이익배분제(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은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우리 경제계에 가장 큰 갈등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당시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용어가 성급했다"면서 "용어에 묶이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회사마다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무슨 제도라고 해서 싸울 일이 전혀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상호 보완적인 두 제도가 동반성장을 잘하려는 취지라는 뜻이다.
그는 "대기업 CEO가 직접 협력업체들과 만나 현장도 보고 애로사항도 듣고 대기업의 시각에서 진단과 처방을 해주면 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자사에 맞는 제도를 자율적으로 도입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연말이면 성공적인 모델들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ㆍ중기 동반성장뿐 아니라 협력사 간 동반성장에도 힘쓰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유 위원장은 "현재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1차 협력사 위주로 국한된 것이 사실"이라며 "1차 협력사와 2ㆍ3차 협력사 간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2ㆍ3차 협력사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중견기업급의 1차 협력기업들도 2ㆍ3차 협력업체와 공정거래협약을 맺고 동반성장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고 했다. 동반성장지수 체감도 조사에서 대기업은 1차 협력사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1차 협력사는 2ㆍ3차 협력사를 통해 평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동반성장 문화를 전파할 방침이다.
유통·서비스 적합업종 선정 23일 공청회
올 초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선정돼 사업철수 권고안이 내려진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업종에서 일진전기 등의 대기업이 이를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철회하는 파문이 일었다. 최근에는 콘크리트혼화제협회가 콘크리트혼화제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적합업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대기업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협조하지 않고 중소기업은 도와달라고만 하는 경향이 아직 존재한다"면서 "자기중심의 이익보다는 동반성장이라는 사회적 화두에 대한 인식전환이 절실하다"고 언급했다. 결과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양측 간 논의와 객관적 관점에서의 결과이므로 이를 수용할 민주시민정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어 그는 "해당 대기업이 진정성 있는 동반성장 실천과 성숙한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희망했다.
동반위는 오는 23일 유통서비스 분야 적합업종 선정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해 본격적인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유 위원장은 "서비스업종 적합업종은 제조업과 달리 유형이 다양하고 범위도 넓어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현재 체크리스트와 범위에 대한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데 6월까지 용역을 마치면 하반기에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유장희 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린 동반성장위원회 제16차 전체회의.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이 취임 이후 주재한 두번째 자리다.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는 날임에도 과거 초과이익공유제 논란 때 발생했던 재계 측 위원들의 보이콧은 없었다. 오히려 한 위원은 회의 후 출구에 서서 악수하는 유 위원장에게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유 위원장은 '소통'을 강조한다. 그는 동반위의 운영방침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원들을 모시고 하는 위원회"라며 "운영 등 모든 면에 대해 논의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동반위와 관련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과 마찰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되는 것 같으나 싸움터처럼 인지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제2기 위원회에서는 소통을 바탕으로 한 동반성장 문화가 산업계 전반으로 착근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최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과 잇따라 만났다. 오는 17일에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만난다. 세 기관 모두 동반위의 현안을 함께 고민하는 곳이어서 위원회 활동에 대한 활발한 참여와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유 위원장은 "대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 동반성장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우리 대기업들 역시 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양 기관이 함께 각 산업과 기업 문화에 맞는 모델을 찾는 작업이 가장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앞서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은 물러나는 자리에서 "전경련이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전경련과 그간 다소 매끄럽지 못한 관계로 비친 부분에 대해 유 위원장은 "앞으로는 위원회와 전경련이 꾸준한 소통과 대화를 통해 동반성장의 모델과 현실적인 방법론을 도출해갈 수 있는 접점을 찾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허 회장이 동반성장지수 발표 후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 동반성장위원장과 만나서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데 대해 "소통이 가능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변화된 것에 만족하며 조만간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는 뜻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유 위원장이 포스코 이사회 의장 등을 지낸 것을 들어 향후 동반위가 정부와 재계의 의견에 발맞춰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이는 기우이며 앞으로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균형 있는 동반성장이 정착되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대기업 관련 일도 했지만 중소기업 관련 자문활동도 해왔고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통해 국가 전체의 큰 틀에서 균형 있게 보는 경험도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 위원장은 한국경제학회장ㆍ한국국제경제학회장ㆍ한미경제학회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브레인 역할을 활발히 해왔다. 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중소기업중앙회 자문위원 등을 거쳤고 자원봉사단체인 BBB코리아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기업과 동반성장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약력 ▦1941년 전북 전주 ▦1959년 경기고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 ▦1969년 미 UCLA 경제학석사 ▦1972년 미 텍사스 A&M 경제학박사 ▦1985년 한미경제학회장 ▦1989~1997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ㆍ원장 ▦2001년 한국국제경제학회장 ▦2003년 한국경제학회장 ▦2004년 이화여대 부총장 ▦2006년 이화여대 명예교수 ▦2008년 동아시아경제학회장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문위원 ▦2010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BBB코리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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