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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독 인플레에 민감한 이유는?

1차대전 직후 살인적 인플레로, 경제 피폐·히틀러 부상 토대 제공

독일은 왜 다른 나라보다 유독 인플레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까. 물론 방만한 통화팽창 정책에 따른 거품 붕괴로 홍역을 앓고있는 미국ㆍ영국 주도의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식 해결 방식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반감도 있는게 사실이다. 돈을 마구 찍다가 발생한 문제를 돈을 다시 찍어 고치는 해결 방법을 따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독일의 기저를 이해하려면 1차대전 패전 직후 들어선 1920년대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 당시 프랑스 등 승전국은 독일이 다시는 군비를 확장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명분 하에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를 갚기 위해 대량으로 마르크화를 찍어내게 된다. 프랑스와 벨기에 연합군은 독일이 전쟁 배상금을 제때 갚지 못하자 독일 북부의 공업지대인 루스 지방을 점령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배상금 상환 과정에서 마르크화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당시 독일 시민들은 빵 한 파운드를 사는데 2,500억마르크를 지불해야 할 정도로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결국 23년 총리에 취임한 슈트레제만이 1조의 구 마르크화와 바꿀 수 있는 1 신 마르크화를 만드는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화폐 발행을 엄격하게 금지함으로써 가까스로 인플레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경제 불안에다 29년 세계 대공황까지 겹치면서 독일 경제는 피폐해져 갔고 결국 이 같은 혼란기를 타고 독재정권인 나치스가 탄생하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대량 화폐 발행으로 깊은 상처를 안았던 독일로선 미ㆍ영이 주도하는 현재의 통화 방출을 통한 경기 부양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충수로 비쳐지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는 이미 수조달러의 충분한 돈을 시중에 풀었고 어느 순간 경기회복 심리가 발동하면서 이 돈이 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 망령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염려다. 지금은 금융부실 때문에 은행이 제 구실을 못해 돈이 실물로 파급되지 못하고 금융권에 쟁여있지만 어느 순간 한겨울에 얼음 밑에 쌓여있던 봄물 터지듯 돈이 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있는 인플레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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