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보잉777 여객기(항공편 MH17) 격추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세력 및 러시아 간 책임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사고원인에 대해 친러 반군이 이 여객기를 우크라이나 정부군 비행기 오인,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했다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12시15분(현지시각)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이튿날 오전6시10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MH17편이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을 지나던 중 미사일에 맞아 샤흐툐르스크 그라보노 마을 인근에 추락했다. 추락지점은 러시아와의 국경으로부터 50㎞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륙 후 약 3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사고로 승객 283명, 승무원 15명 등 298명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CNN에 따르면 18일 현재까지 탑승객 출신국가는 네덜란드가 154명으로 가장 많고 말레이시아 43명, 호주 27명 등으로 집계됐으며 국적불명도 41명이다. 미확인 사망자 가운데는 미국인도 상당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탑승객 중 어린이도 80여명이나 돼 국제사회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여객기 격추에 사용된 무기가 러시아제 이동식 중거리 방공 시스템인 '부크(Buk)' 미사일인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MH17은 피격 당시 고도 3만3,000피트(약 1만m) 상공을 날고 있었으며 일반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로는 격추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CNN은 미국의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사고기 추락 직전 지상에서 지대공 미사일용 레이더 가동이 탐지됐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누가, 왜 미사일을 쐈는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장악한 친러 반군이나 러시아군이 MH17을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화물수송기로 오인해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앞서 반군은 지난달에도 정부군의 An-26 수송기를 격추해 타고 있던 군인 49명을 몰살한 바 있다. 안톤 게라센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고문도 "MH17은 반군이 쏜 부크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고 이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도 나온다. 반군 측 지도자이자 러시아군 특수요원으로 알려진 이고르 이바노비치 스트렐코프는 사고 직후인 오후5시50분쯤 동유럽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VK닷컴에 "토레즈 인근에서 An-26기를 격추했다. 현재 근처 광산 어딘가에 떨어졌다"면서 "우리 상공에서 날지 말라는 경고도 보냈다"는 내용의 단문 메시지를 올렸다 삭제했다.
AP통신과 우크라이나 언론의 기자들은 MH17 추락지점 인근 반군 장악 도시인 스니즈네에서 이동식 부크 미사일 발사대를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민항기를 격추했다는 반군들의 대화가 담긴 도청자료 2건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친러 반군과 러시아 측은 "정부군의 소행"이라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이타르타스와 러시아 반관영 뉴스채널 RT 등은 "정부군이 MH17 추락지점 인근에서 최소 27대의 이동식 발사대를 갖춘 부크 미사일 포대를 운용 중"이라며 "반군은 고도 1만m 상공의 비행체를 격추할 수 있는 수준의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러시아 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친러 도네츠크공화국의 세르게이 카브타라데스 총리 특별대표도 "우리는 사거리 3~4㎞에 불과한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밖에 없다"면서 "사고기체는 이보다 훨씬 높은 고도로 비행하는 만큼 정부군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저녁 주재한 회의에서 "정부군이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공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러시아 방공 미사일이 발사되거나 군 전투기가 도네츠크 접경지역을 비행한 일이 없다"며 MH17 격추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쟁지역 상공을 운행하는 민항기들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사고 직전까지 일평균 300대의 여객기가 우크라 동부 상공을 통과했다. 미 연방항공청(FAA)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 국제 항공기구는 올 들어 이 일대 비행에 대해 주의하라는 경고를 각 항공사에 보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재 모든 여객기의 자국 내 비행을 금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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