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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아흔 번째 생일 기념 컨퍼런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위원으로 일한 버냉키는 "(대공황의 책임은 연준에 있다고 지적한)프리드먼이 옳았고, 우리(연준)가 잘못했다"고 고백했다. 버냉키의 이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이는 대공황 당시 연준의 대응방식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촉발한 금융위기와 뒤이은 심각한 경기침체에 대응해 연준이 잘못된 통화정책으로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버냉키는 "다시는 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던 것이다.
대공황 당시 연준은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방기해 수백 개의 은행들이 도산하고 그 충격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파급되도록 했다. 뒤이은 경기침체에도 경기 부양 정책을 쓰지 않고 금본위제 방어를 위해 외려 긴축정책으로 대응함으로써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다.
버냉키는 이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연준 의장으로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섰다. 앨런 그린스펀에 이어 미국 경제대통령 자리에 오른 그는 첫 번째 임기 중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부터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아 버냉키가 선택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인하와 구제금융 등으로 금융시장에 광범위하게 개입했고, 실물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자산 매입, 이른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QE)'라는 강공 정책을 동원하게 된다. 이는 연준 100년 역사상 처음일 정도로 비전통적이고 이례적이었다.
버냉키는 "공중에서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말로 '헬리콥터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시장에 4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푸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책을 단행했다. 물론 양적완화(QE)를 놓고 논쟁이 뒤따른 것은 사실. 아직 최종 판단을 내리기는 섣부른 감이 있지만, 버냉키의 정책이 지난해 미국 다우지수를 사상 최고로 끌어올리는 등 미국 경제의 부활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버냉키는 지난 1월 31일 자신의 경제철학에 따라 행한 양적완화(QE)의 마지막 종지부를 차기 의장인 재닛 옐런에게 넘기고 퇴임했다.
신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는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미국을 살려낸 버냉키가 직접 말하는 연준과 금융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버냉키가 2012년 3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했던 강연 내용을 엮었다. 버냉키는 강연에서 연준의 창설부터 최근 글로벌 위기까지 연준의 100년 역사를 살펴보고, 연준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쉽게 설명한다. 또 연준을 지휘했던 수장으로서 위기에 대한 연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연준의 기원과 사명(역할)을, 2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연준의 변화 과정을 다룬다. 3장에서는 2008∼2009년 금융위기를 원인부터 철저히 분석한다. 4장은 글로벌 위기이후 여파와 연준의 금융규제 변화를 살펴본다. 각 장 마지막에는 학생들의 질문과 버냉키의 답을 실었다. '버냉키 의장이 들려주는 가장 쉬운 연방준비제도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연준의 역할과 위기대응의 역사를 쉽게 풀이했다.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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