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논란이 빚어진 단초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제공했다. 교과부의 지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교과서 업체에 공문을 보내 수정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교과부와 평가원의 조치는 졸속 행정의 표본이다. 이 조치가 교과부의 말대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교과서 업체에 권고하기 전에 선관위에 사전 문의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가원은 지난달 6일부터 20일까지 검정심의회를 열고 이 사안을 논의했다. 따라서 사실상의 삭제 지시를 한 뒤 전개될 상황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교과부는 무엇이 급했는지 사전 문의 없이 공문을 발송했고 급기야 해당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교과부의 정치적 중립성 논리는 어수룩하다. 도 의원 작품을 검열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분시갱유(焚詩坑儒)'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교과부의 행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말로만 정치적 중립일 뿐 이번 해프닝 자체가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 9일 발표한 전국 시ㆍ도교육청 평가결과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있는 교육청 모두가 낮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교육청의 교육행정 성과가 낮아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컨대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는 대구의 경우 해당 교육청은 우수 평가를 받았다. 또 평가지표 중 특성화고 취업률 등의 일부 내용은 교과부 스스로 정리한 통계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것들에 근거한다.
교육은 흔히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굳이 백년은 아니더라도 며칠은 내다보는 교육당국을 기대할 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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