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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리포트] "기업가치 증대" VS "단기 이익 집착"… 행동주의 투자 선악 논쟁

운영자금 840억달러로 몸집 불리며 황금기 구가<br>공격 대상도 중기서 글로벌기업·예술계까지 넓혀<br>"독단경영 감시역" "기업성장에 방해" 평가 엇갈려


"그는 자신을 행동주의 투자가라 부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뜨내기 한탕주의자(carpet bagger)에 불과하다"

이달 초 헤지펀드계의 신동이라 불리는 다니엘 롭에 대한 헐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의 원색적인 비난이다. 롭은 지난 5월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서드포인트가 소니 지분 5.7%를 확보한 사실을 밝히면서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소니엔터테인먼트 일부 사업을 분리할 것을 요구했다. 클루니는 "롭 같은 작자들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영화사들이 단기 수익에만 몰두하게 만들면 결국 영화 산업은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롭은 최근 세계 최대 경매업체인 소더비의 지분 5% 이상을 인수하는 등 예술계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롭의 공격 계획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더비가 보유한 7억 달러 가량의 현금을 풀도록 압박해 주가를 띄우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들어 행동주주 투자가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공격 목표도 과거 중소기업 위주에서 세계 최대기업인 애플 등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하고 영화산업, 예술계 등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들은 지분 일부를 확보한 뒤 경영진을 압박하거나 이사회에 직접 진출해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이름 아래 사업 구조조정,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해 투자이익을 극대하고 있다.

이들은 독단적인 경영을 감시하고 비효율적인 사업 구조를 지닌 기업들을 채찍질해 주주가치를 높이기도 하지만 단기 이익에 집착해 기업의 장기 발전이나 고용ㆍ환경 등 사회 전체 이익은 '나 몰라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헤지펀드, 글로벌 기업 정조준= 애플, 소니, 펩시, 마이크로소프트(MS), 듀폰, 헤스, 타깃, 홀푸드, 프록터 & 갬블, 크래프트, 델, JC페니 등등.

올 들어 '주주 행동주의'(Share activism)'를 기치로 내건 헤지펀드들로부터 경영 간섭에 시달리거나 결국 공격에 굴복한 글로벌 기업들이다. 지난달 말에는 MS가 지분 이 0.8%에 불과한 헤지펀드 밸류액트가 위임장 대결을 벌이며 소란을 일으키자 결국 밸류액트 출신에 이사회를 개방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외에도 억만장자 투자자 칼 아이칸은 지난달 애플 지분 매입 사실을 공개하면서 "(애플 CEO인) 팀 쿡과 9월 중 저녁 식사를 하며 자사주 매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사주 매입은 전형적인 주가 호재로 아이칸의 공개 직후 애플 주가는 5% 이상 급등했다. 애플은 올 초엔 또 다른 행동주의 투자자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라이트캐피털 회장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들 헤지펀드들은 과거에는 적당히 경영에 간섭하다 주가가 오르면 '먹튀'에 나섰지만 최근에는 아예 회사 미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다니엘 롭은 야후의 최고경영자(CEO)에 구글의 임원이던 메리사 메이어를 앉혔고, 칼 아이칸은 모토롤라를 구글에 팔아치우는 데 일조했다. 밸류액트 역시 MS의 차기 CEO 선정 때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몸집 커지면서 황금기 구가= 행동주의 투자가들의 거침없는 진격은 우선 최근 급격하게 불어난 몸집 덕분이다. 시장조사업체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자금 운용 규모는 약 840억 달러로 4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또 초단타 매매(HFT) 기법이 대중화되면서 헤지펀들이 차익매매 위주로는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하자 행동주의 투자 기법에 눈을 돌린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미국 경제전문방송인 CNBC는 "행동주의자들이 기업의 미래 실적을 추정해 이익을 내신 대신 실적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해 회사 경영에 간섭하면서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행동주의 투자가들의 투자 성과는 쾌 괜찮은 편이다. HFR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올해 수익률은 지난 6월말 현재 9.6%로 일반적인 주식매매 기법의 헤지펀드(7.7%)보다는 앞서 있다. 안정적인 수익도 매력이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후유증이 한창이던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행동주의 펀드들은 연평균 13%의 꾸준한 수익률을 보였다.

◇ 기업 미래가치 증대 vs 단기 이익 집착= 이 같은 주주 행동주자들의 행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행동주의자들이 '미꾸라지 속 메기'처럼 기업 경영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구조조정을 가속화해 결국 기업 실적을 개선시킨다고 주장한다. 실제 하버드대학 로스쿨의 루시안 벱척 교수가 지난달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로부터 개선 요구를 받은 기업들은 이후 3년 내 영업이익 등 경영 성과가 증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들이 과도한 배당,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면서 중장기적인 성장동력 확보에는 해가 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대표적인 반(反)행동주의론자들인 '와치텔, 립톤, 로젠앤드카드(Wachtell, Lipton, Rosen&Katz)'의 변호사들은 최근 자기 고객(기업)들에게 "단기 성과만 강조하는 행동주의자들이 결국 미 기업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경고했다.

행동주의자들의 슬로건인 '주주가치 극대화'가 월가를 살찌우는 데만 기여할 뿐 고용 증가 등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밴더빌트대학 로스쿨의 마가렛 블레어 교수는 "월가가 돈을 벌도록 하기 위해 회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며 "기업은 사회에 상품ㆍ서비스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존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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