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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 외모 지상주의에 경고
입력2010-11-07 17:55:31
수정
2010.11.07 17:55:31
[리뷰]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재기 넘치는 유머와 부조리한 현실을 통렬히 꼬집는 독설,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시와 낭만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연극 한 편이 조용히 입 소문을 타고 있다. 프랑스 최후의 낭만주의자로 불리는 에드몽 로스땅(1868~1918)이 쓴 낭만 희극으로 명동예술극장이 자체 제작한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당대 최고의 검객 시라노가 주인공이다.
불굴의 투사이자 용감한 시인인 시라노는 크고 못생긴 코 때문에 사랑하는 록산느에게 감히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의 아름다운 시와 언어로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면서 미남 청년 크리스티앙이 자신이 연모하는 록산느와 맺어질 수 있게 도와 주고 그 사랑의 비밀을 오랜 기간 자신의 가슴에만 묻어둔다.
크리스티앙이 전쟁터에서 숨을 거두고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 록산느는 감동적인 연애 편지를 자신에게 썼던 사람이 크리스티앙이 아니라 시라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록산느는 시라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시라노는 그녀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을 완성하는 한 남자의 순수한 모습이 주는 감동은 그 자체로 묵직했다. 특히 최근 성형이 일반화되는 현실 속에서 시라노가 자신의 외모로 인해 겪는 콤플렉스는 외모 지상주의에 경고음을 울리기 충분했다.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고 동시에 멜랑꼴리가 담긴 이 작품은 17세기 공상여행소설의 작가로서 종교와 사회에 대담한 견해를 밝혔던 논객이었던 시라노 드 베르쥬락(1619~1655)을 소재로 한다. 작품이 탄생했던 19세기 말에는 드레퓌스 사건(1894년)으로 프랑스 정치계ㆍ종교계ㆍ지성계ㆍ예술계가 양분됐으며 이런 현실에 지친 프랑스 대중들은 낭만주의 작품에서 위안을 얻었다.
연출자는 고전을 충실히 재현하는 한편 현대인의 코드에 맞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았다. 총 공연 시간이 2시간 40분에 달해 인내심을 요하지만, 주옥 같은 대사를 음미하기며 몰입하기 부족함이 없다. 오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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