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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설] 중앙은행의 역할

스위스중앙은행(SNB)은 최근 유로화를 무제한 사들여 1유로당 스위스프랑 환율이 1.20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막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로존의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프랑화 가치상승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스위스는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프랑화는 지난 2008년 이후 변덕스러운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투자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서양과 일본이 모두 채무위기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스위스만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프랑화의 인기는 해외에서 프랑화의 구매력을 끌어올린 반면 스위스의 수출제품을 더욱 비싸게 만들었다. 수출업자들은 프랑화의 강세에 신음하고 있다. SNB는 프랑화 환율을 사실상 고정시키면서 이 같은 압력을 고려했을 듯하다. SNB는 "현재 과대평가된 스위스 프랑화의 가치는 스위스 경제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SNB를 환시장에 개입하도록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아니다. 중앙은행은 통화의 독점적인 공급자이다. 프랑화처럼 통화가치가 급격하게 오를 때 시장은 중앙은행이 충분한 돈을 찍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오늘날 중앙은행들이 빠르게 상승하는 통화가치에 대응하기 위해 행사할 대표적인 무기는 바로 '불태화' 개입이다. 이는 해외 부문으로부터 외자유입이 늘어날 경우 각종 통화채를 발행하거나 재할인금리 및 지급준비율을 인상해 시중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은 투기꾼들에게 물리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공급과 수요 간 불균형에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 이와 달리 SNB의 결정은 이러한 상쇄효과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SNB는 프랑화 수요 확대에 맞서 추가적인 공급이라는 카드를 던졌다. 이는 스위스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을 것이다. 또 앞으로 프랑화에 대한 수요가 미약해진다면 추가적인 통화공급을 중지할 수 있다. 1970년대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 후 정책 당국은 '시장이 환율을 정하는 것이 낫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환율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중앙은행만이 가능하다. 중앙은행이 자유방임주의를 사칭한다면 자신들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이번 SNB의 결정은 만점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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