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 총재의 갑작스러운 조기사퇴 발표, 이른바 '시라카와 서프라이즈'에 엔ㆍ달러 환율과 일본증시가 폭등했다. 아베 신조 총리와 암묵의 대립각을 세워온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의 조기사임으로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할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엔ㆍ달러 환율은 94엔을 돌파하고 주가지수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까지 뛰어올랐다.
6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오후 한때 달러당 94.07엔까지 급락해 2010년 5월5일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며 2년9개월 만에 94엔대로 진입했다.
엔저에 속도가 붙으면서 증시는 폭등했다. 이날 닛케이평균지수는 장중 1만1,498.43까지 치솟으며 1만1,500선을 위협하다가 전날 대비 3.77% 오른 1만1,1463.75로 마감했다. 이는 2008년 9월29일 이후 5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혼다(3%)ㆍ마쓰다(4.8%) 등 엔저의 혜택을 누리는 수출 대기업들의 주가가 눈에 띄게 약진했다.
이날 일본금융시장이 이처럼 들썩인 것은 5일 밤 시라카와 일본은행 총재가 임기보다 3주 일찍 퇴임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하면서 아베 정권이 한층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구사할 것이라는 기대가 증폭됐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양적완화 정책에 내심 반대해온 시라카와 총재가 일찌감치 물러나기로 함에 따라 일본은행의 돈 풀기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 팽배해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정부가 후임자를 찾는 데 속도를 낼 것"이라며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공격적 통화정책을 채택할 사람을 후임 총재에 지명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아베노믹스의 걸림돌이 사라지면서 엔저가 한층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최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성 차관이 "엔화가치가 달러당 100엔까지 떨어져도 문제없다"고 말하는 등 정부가 달러당 100엔까지는 엔저를 용인할 것임을 시사해 시장의 눈높이도 한 단계 낮아진 상태다. 빌 디비니 바클레이스 외환전략가는 "달러당 환율이 6개월 안에 96엔까지 상승할 것이며 올해 안에 100엔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지토 노리히로 미쓰비시UFJ 모건스탠리 수석 투자분석가도 "신임 일본은행 총재가 발표되고 일본은행이 자산매입기금을 대규모로 확충할 경우 엔ㆍ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엔화가치 하락)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신임 총재가 취임하기 전인 오는 3월 말까지 달러당 100엔을 찍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격적인 양적완화와 엔저 지속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면서 증시전망도 장밋빛 일색이다. 고니시 이치요 미쓰비시 UFJ투자신탁 애널리스트는 "지금으로서는 증시 상승세가 꺾일 요인이 없다"며 "엔저 흐름이 유지되면서 달러당 95엔대로 진입하면 다음달 말께 닛케이지수가 1만2,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에 과도하게 힘이 실리는 데 대한 우려의 시선도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로버트 새뮤얼슨 칼럼니스트는 3일자 칼럼에서 "(양적완화 등) 경기부양책의 기본 요소인 막대한 재정적자와 초저금리는 한계를 갖는 자멸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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