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패한 기업인에게도 기회를

파격적 디자인에 안전사고 위험이 없는 '날개 없는 선풍기'가 최근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영국의 다이슨이 4년여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출시한 이 선풍기는 "성공은 99%의 실패로 이뤄진다. 계속해서 실패하라.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제임스 다이슨 회장의 '실패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거듭된 실패를 거쳐 이런 혁신적 제품이 나올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몇 년에 걸친 실패를 감내할 만큼 여유 있는 중소ㆍ벤처기업이 드문데다 그런 실패 과정을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봐줄 은행이나 거래처는 더더욱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전과 실패서 창의·혁신 움 터

현장에 나가면 "미국에서는 친구들끼리 벤처를 창업해 두 세 번 실패한 뒤 성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벤처기업이 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는 벤처기업인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한국에서 실패 기업들의 재기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제도ㆍ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중층적으로 퍼져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위축된 투자시장과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이다. 엔젤투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창업 초기 벤처기업들은 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해야하는데 금융기관들은 안전한 원금 회수를 위해 담보나 최고경영자(CEO)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출 받을 여력이 없어 가족이나 친척들의 도움으로 사업하는 경우도 많아 기업이 망하면 CEO도 망하고 일가친척들까지 곤란을 겪는다.

실패한 기업인을 무능하거나 부도덕하게 보는 사회분위기,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을 인정하기는커녕 금융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관행도 재기를 어렵게 만든다. 일부 실패 기업인들은 타인의 명의를 빌어 재창업하는 편법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실패가 주는 충격이 너무 크고 재기가 힘들다 보니 끝까지 버티다 주위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이는 해당 기업 주변의 멀쩡한 기업들까지도 부실기업으로 만드는 '좀비경제'문제를 수반한다.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실패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넘어진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줘 희망을 갖게 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공정한 사회 실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창의와 혁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과 실패를 교훈 삼은 재도전에서 비롯된다.

일찍부터 이런 점을 인식한 선진국에서는 재도전 지원을 국가적 의제로 삼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6년 '승자와 패자가 고정되지 않는 따뜻한 사회'라는 슬로건으로 종합적인 재도전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유럽연합(EU)은 2008년 '중소기업 헌장'을 제정하면서 재기 지원을 핵심적 정책과제로 채택했다.

지속적인 제도·문화 개선 필요

우리 정부도 중소ㆍ벤처기업인 신용회복 지원 강화, 연대보증제도 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지난해부터는 투자 성격이 가미된 정책자금과 재창업기업을 위한 전용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특히 재창업자금은 매출ㆍ고용증가 뿐만 아니라 재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이고 주위의 부정적 시선도 변화시키는 유ㆍ무형의 효과가 크다.

정부는 창의와 혁신에 바탕을 둔 창조경제, 실패자에 손을 내미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관행에서 법ㆍ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과 인식의 틀을 바꾸는 국가적 과제인 만큼 기업과 학교ㆍ언론의 적극적 동참이 간절히 필요하다.

"왜 우리에게는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같은 기업인이 없느냐"고 한탄만하기에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 여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