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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일출봉·일제 동굴기지·4·3 유적지…

풍경에 취하며 아픔이 서린 길을 걷다

성산일출봉 트레킹 포함 8.3㎞ 코스 새롭게 선봬

해녀들 옷 갈아입는 '불턱'

철새도래지·용천수 지대 등 수려한 경관에 흠뻑 빠져

제주관광공사가 새로 개발한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이것 저것 둘러보다 사진도 찍고 또 한참을 걸어도 일출봉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일출봉 뒤편에 뚫려 있는 22개의 동굴은 1944년 일본군들이 자살공격용 보트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뚫어놓은 것들로 지금은 18개만 남아 있다.

성산포 4 3양민학살터 표지석.

한참을 걸어도 돌아보면 일출봉은 그 자리에 있다.

이것 저것 둘러보다 사진도 찍고 또 한참을 걸어도 일출봉은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주에서 새로 선을 보인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이어진다. 두 시간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길이는 성산일출봉에 오르지 않고 트레일 코스를 일순하는 데 걸리는 분량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설명을 듣고 풍경에 취하다 보면 그 시간은 세 시간이 될지 네 시간이 될지 알 수가 없다. 기자 역시 이미 여러 번 올라 본 일출봉 구경은 생략하고 탐방을 시작했지만 한 바퀴를 돌아 출발점에 도착한 후 시간을 보니 이미 세 시간 반이 훌쩍 넘어 있었다.

시작은 성산일출봉 주차장에서부터 했다. 일출봉 오른쪽의 해안으로 내려가 일제가 뚫어놓은 동굴부터 섭렵하기 시작했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을 안내하는 한천복(65) 해설사는 동굴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일출봉 자랑을 늘어놓았다.

"일출봉은 해발 180m 높이 분화구지만 지난해 입장객 수 340만 중 52%가 외국인이고 그중 94%가 중국인이었다"며 "올해는 메르스가 변수이기는 하지만 조기에 극복한다면 350만명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의 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성산일출봉 방문객 수 130만명. 이는 역대 최단기간 100만명 돌파기록이다.

성산일출봉이라는 이름은 산이 성(城)처럼 생긴 데서 비롯한다. 일출봉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가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식어서 생긴 형태로 제주도 내 기생화산이나 오름들과 달리 경사가 가파르다.

해변으로 내려가 200~300m쯤 걸어가자 첫 번째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늘어서 있는 22개의 동굴은 1944년 일본군들이 자살공격용 보트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뚫어놓은 것들로 지금은 18개만 남아 있다.

한천복 해설사는 "이 굴들은 광양·순천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뚫었고 이곳에서 훈련을 받던 일본군들은 20세 미만의 소년병들이었다"며 "이들은 주말에는 외출을 나오기도 했는데 위안소도 두 곳이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이 이곳에 동굴기지를 건설한 것은 제주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1944년 당시 제주도 인구가 20만명이었는데 일본군 주둔 병력이 7만5,000명이나 됐던 것을 감안하면 그 전략적 가치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 주둔했던 부대의 이름은 무라야마부대 45진양대. 이들은 자살공격 부대로 가미가제 특공대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자 합판으로 만든 1.5톤짜리 배에 400마력짜리 엔진을 얹어 폭탄을 싣고 적함에 돌진할 궁리를 했다. 일출봉은 의구(依舊)한데 인걸은 물 흐르듯 해서 이제 이 길을 오가는 이들은 자살특공대 훈련을 받던 일본 청년들 대신 중국관광객들로 채워지고 있다.



동굴진지에서 '터진목'이 있는 곳으로 300m쯤 나아가면 트레일을 시작하는 초입에 '불턱'이 있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젖은 몸을 말리던 곳인데 이 불턱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 실물인지 옛 모습을 복원해놓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2015년 현재 제주도 내에서 불턱을 이용하고 있는 해녀의 수는 4,415명. 그중 일흔이 넘는 해녀들이 2,643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4,415명 중 최연소 해녀는 추포도에서 물질을 하는 서른살 정소영씨고 최고령은 95세 고인호씨로 알려져 있다.

출발점에서 1.1㎞ 지점에는 4.3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가 방문해 풍경을 묘사해 놓은 비석이 있다.

"1948년 음력9월25일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해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일출봉)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중략)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3일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됐다."

일출봉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이들의 심리를 칼날처럼 묘사한 그의 필력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67년이 흘러 세기가 바뀐 오늘, 그날의 비극은 시나브로 잊혀져 가고 다만 이방인의 글로 남아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부터 이어지는 길은 철새도래지, 용천수 지대, 교각 입구, 오조리사무소를 거쳐 테우리동산 입구, 우도뷰포인트, 이생진시비, 오정개를 섭렵한 후 성산일출봉 주차장에서 끝을 맺는다. 시작점에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일주 코스 내내 일출봉은 나그네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창현 제주관광공사 융복합사업처장은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마을 주민들이 먼저 나서서 코스개발을 요청해왔다"며 "성산일출봉 주차장을 시작으로 성산리와 오조리 양방향으로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성산일출봉 등반을 포함, 8.3㎞(성산일출봉 트레킹 1.2㎞ 포함)의 코스로 3시간30분에서 4시간이 걸리는 구간 전체에서 수려한 경관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관광공사 융복합사업처(064-740-6971)로 문의하면 된다.

/글·사진(제주)=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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