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지난 1990년대 중반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었던 임영방(1929~2015) 전 관장의 부고를 마주하면서 그 시대가 원하는 국립미술관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백남준과 절친했던 고(故) 임 전 관장은 우리 국립미술관의 국제화에 앞장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립했고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광주비엔날레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가 공석이라 공모가 진행 중이다. 일단 9일 원서 접수가 마감된다. 이 시대가 원하는 국립미술관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에 대해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회장을 비롯해 미술평론가 최열, 홍경한, 지난해 '단색화'의 세계적 붐을 일으킨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등 큐레이터와 작가를 포함한 다양한 미술계 인사들의 의견을 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한 후 1973년 덕수궁으로 이전했다가 1986년에 과천관을 열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중년이다. 세계적 수준을 꿈꾸며 개관한 서울관이 개관 1주년을 넘기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아카이브와 연구센터로서의 과천관과 근대미술에 무게를 둔 덕수궁관 외에 청주에 수장고도 준비 중이다. 미술관이 틀을 잡아가는 '제2의 도약기'에 놓여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미술관의 기본에 충실한, 기초를 다지는 관장이 필요하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갖춘 사람, 도덕적 흠결이 없는 인물이어야 함은 기본이다. 3~4개 분관을 가진 대형 조직을 체계적으로 이끌 조직 장악 능력과 행정력, 그리고 풍부한 현장 경험은 '필수 덕목'이다. 국제적 미술 정세에 대한 안목이 있어 국제교류를 추진하면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는 '국제감각'도 필요하다. 또한 관장이 조직의 리더인 동시에 미술계의 큰 어른이기에 '생계가 아닌 생존의 문제를 오가는' 창작자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덕망도 갖춰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2010년 김윤수 전 관장 이래로 임기를 제대로 마친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없었다. 관장 자리를 두고 또다시 '윗선 내정설' '인맥·학맥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무늬만 공모제를 하느니 차라리 국정철학(?)에 맞는 사람을 대통령이나 장관이 임명하는 게 낫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는 판국이다. 미술대학 출신인 탓에 오얏나무 아래서 풀어헤쳐진 갓끈도 고쳐매지 못하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난처할 듯하다. 자신의 입신을 위한 '미술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의 미술을 한 단계 도약시킬 진정성 있는 관장이 우리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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