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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월9일] 목조 유조선


1861년 1월9일, 런던항. 엘리자베스 와트(Elizabeth Watts)호가 닻을 내렸다. 미국 필라델피아 항구를 출발한 지 50일 만에 도착한 배에는 특별한 화물이 실려 있었다. 1,329갤런의 등유다. 서해안 바닷가를 오염시킨 태안 유조선이 7만여배럴, 30만톤급 유조선이 176만배럴을 운송하는 시대에 비교하면 조족지혈이지만 대서양을 통한 유류 운송은 처음이었다. 돛대 두 개에 총톤수 224톤. 당시로서도 결코 크지 않은 범선 와트호가 ‘최초의 유조선’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대형 화물선들이 안전을 이유로 등유 적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보통 범선인 와트호는 등유를 158리터들이 맥주통에 담아 실어 날랐다. 항해 내내 와트호 선원들은 화물에서 멀리 떨어져 지냈다고 전해진다. 폭발 위험을 두려워해서다. 운임도 비쌌다. 보통 화물의 3배를 받았으니까. 보다 진보된 유조선은 1869년에야 나왔다. 범선 찰스호는 기름을 오크통에 싣지 않고 용량 13톤짜리 철제 사각형 용기 59개에 담았다. 별도의 기름 탱크를 갖춘 ‘본격적인 유조선’의 등장의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이 러시아산 석유를 운송하기 위해 1878년 건조한 조로아스터호, 1886년 선보인 독일의 글뤼카우프호, 영국 셸사의 뮤렉스호(1892년)가 저마다 원조라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상업 용도로 석유를 날랐던 최초의 선박이 와트호라는 점이다. 147년 전 작은 목조선으로 기름을 운반했던 사람들의 용기와 도전은 오늘날 유조선 시대를 낳았다. 현대 유조선의 대부분은 이중격벽 등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예외인 곳도 있다. 안전불감증의 나라 한국이다. 범선시대만도 못한 안전의식에 유조선 사고가 발생하고 아름다운 해안이 멍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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