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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68> 월요일에 읽는 '불금'의 사회학

화려한 도시의 야경만큼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는 사람들. 일상에서 벗어나 만끽하는 자유의 대명사로 불리는 ‘불금’이라는 단어에는 더 자극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을 원하는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사진출처=morguefile.com

월요일입니다. 모두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파이팅’하는 ‘불금’을 지나,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주말을 거쳐 다시 당도한 한 주의 시작입니다. 월요일이 우울하다는 것은 이제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수사입니다. 오히려 한 주의 시작을 좀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일요일 저녁 9시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어떤 날에 즐거워하고 우울해하는 저변에는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근본 심리나 문화 환경 안에 자리잡은 다양한 습관과 생각하는 방식이 큰 역할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주중에는 회사에 나와 쳇바퀴 돌 듯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금요일이 되면 힘을 내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쉬어도 된다는 쾌감, 그리고 여러가지 일들을 겪어야 하는 직장에서 다소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해방감일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자신의 일상을 벗어나 굳이 어떤 대가를 교환하지 않아도 서로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불금이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문화적인 관행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식사든 ‘약속’이 있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친분을 나누기 위해 함께 밥을 먹습니다. 점심이면 비즈니스 미팅이나 친교를 막 쌓기 위한 사람인 경우일 것이고, 저녁이면 기꺼이 공과 사를 함께 공유해도 좋은 중요한 상대일 겁니다. 만약 여러 이성을 만나는 사람이라면, 주말일수록 자신에게 더 매력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주중일수록 덜 중요한 사람을 만나겠죠. 그런 점에서 불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자신이 모든 일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울 수 있는 그 누군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죠. 그 때문인지 명동, 이태원, 강남역 등 금요일이 되면 불야성을 이루는 전통적인 상권과 경리단길, 서래마을, 합정역처럼 새로 등장한 신흥 상권들이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서울은 다양한 즐거움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새로운 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불금 지도를 그려보면 아마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복잡한 욕망을 금세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로수길은 밥도 먹고 옷도 사고 싶어서, 이태원은 즐겁게 음악도 듣고 맥주도 한잔하고 싶어서인 것처럼. 휴일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최대의 복지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수단을 알려주는 사람은, 돈을 벌든, 아니면 자신의 회원을 만들든, 대중들을 최대한 자기편으로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불금에 노는 방식이 ‘술’이나 ‘이성 만나기’에 경도되어 있는 것도 가끔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포인트입니다.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발달한 외국의 경우, 금요일 저녁에 공연을 보거나 야경이 아름다운 근교로 나가 새로운 경험을 해 보려는 커플들이 자주 포착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불금’은 반짝 그 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로만 가득찬 것 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기성세대가 불금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젊은이들에게 좋은 선례와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한 채, 열심히 일해 왔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마음 놓고 놀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 지 얼마 안됐으니까요.

사족이지만, 새로 창성동 별관에 출근하신 총리 후보자는 일요일에도 출근한다고 합니다. 주말 없이 일하는 이들의 건강과 함께 염려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느라 금요일도 즐기지 못하는 각박한 사람들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이야기처럼 잘 놀고 쉬어본 사람이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삶의 윤기를 주고, 단순히 세제 개선이나 인프라 건설 같은 조치 말고도 다양한 ‘문화’를 통해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방 7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가, 이제는 남들보다 더 여유 있게 금요일을 즐길 수 있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주일을 보내며 조금 더 의미 있는 ‘축제’의 시간을 하루씩 가지려면, 제도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사람들부터 휴가와 여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만큼은, 뭔가 새로운 금요일을 맞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면서, 독자 여러분의 윤기 있는 월요일을 기원합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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