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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단식과 폭력, 그리고 대화
입력2005-02-03 17:19:57
수정
2005.02.03 17:19:57
조희제 <사회부장>
단식과 폭력이 최근 우리 사회에 새로운 이슈와 함께 다시 등장했다.
권위주의 정권의 거대한 폭력에 주눅 들어 제대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던 시절 힘겨운 저항의 표시로 학생들과 시민들은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작대기를 휘두르며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었다.
매캐한 최루탄 내음, 끌려가는 시민과 학생들의 처참한 모습, 닭장차의 음울했던 풍경. 70ㆍ80년대 이 같은 모습을 자주 목격하고 접했었다. 노동 현장에서도 좀더 조직적인 항거를 했지만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수단
폭력과 함께 권위주의에 대한 또 다른 저항의 수단이 단식이었다. 감옥에서, 종교시설에서 곡기를 끊으며 자신의 주장과 입장을 전달하려는 사람들의 소식도 비제도권 내 언로를 통해 간간이 전해졌다. 민주와 자유에 대한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 민주화에 밑거름이 됐다.
권위주의가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의 단식과 폭력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대의원 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졌다. 노사정위원회에 복귀, 사회적 교섭을 통해 노동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주노총 지도부에 반대하는 강경파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소화기와 시너를 뿌리고 주먹다짐이 오가며 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우리는 자본에 맞서 싸웠을 뿐”이라고 큰소리쳤다. 현 민주노총 지도부를 ‘자본과 기업이 민주노조 운동에 파견한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폭력을 조장한 것이 아니라 조직된 폭력에 저항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투쟁으로 노동 현안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들의 주장을 한꺼풀 벗겨보면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 사회적 교섭은 곧 대량해고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IMF 이후 대량해고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재취업이 힘들고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못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해고는 곧 바닥으로 추락이라는 절박함이 깔려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대화를 거부하고 극단적이고 격렬한 폭력을 선택했다. 기아자동차 노조의 취업 장사와 함께 이번 폭력 사태로 민주노총은 들끓는 비난 여론에 직면해 있다.
한 스님이 환경 문제로 단식 중이다. 경부고속철 천성산 관통 터널 공사에 반대하며 지율 스님이 단식을 한 지 3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생명의 촛불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자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야 한다며 종파를 초월해 스님의 단식 장소인 정토회관을 방문, 단식 중단을 요청하고 있지만 스님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천성산의 도롱뇽을 지키자는 스님의 작은 목소리는 이제 천성산 도롱뇽과 함께 우리 사회에 잔잔하면서도 엄청난 파장을 던졌다.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구도자의 모습이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우리에게 가르치며 속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국회는 단식 중지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무총리까지 나서 단식 중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도 이제는 스님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환경문제등 논의·타협이 대안
환경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예민하고 파열음이 강한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율 스님의 단식으로 사람들이 다시 돌아보게 된 천성산 관통 터널도 그렇지만 새만금 공사도 정부와 환경단체간 타협 없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민주노총의 폭력과 지율 스님의 단식은 우리 사회의 대화기피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과거 권위주의를 부정하며 우리 사회는 대화를 거부했다. 지금은 집단과 개인의 이념과 주장이 부딪히며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나만의 주장만이 옳고 나와 다른 생각은 나쁘다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또한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에만 집착하는 접근법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화를 통한 논의와 타협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없지만 다양한 주장과 목소리가 격렬하게 부딪힐 때 차선의 대안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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