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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문화를 키워라] <중> 변화의 기폭제는 문화마인드

'가진 자만의 호사' 편견 탈피 … 대중 스스로 참여하고 즐겨야

일상·개인경험 통한 작품 활동은 삶의 원동력

신도시·공단 건립때 주민위한 문화시설 고려를

금천예술공장이라는 지역 문화기관을 거점으로 인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금천미세스'가 현대미술가 임흥순씨와 함께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천예술공장


# 서울 금천구 독산동 인근에 사는 9명의 중년여성은 원래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였다. 지난 2010년 12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지역 창작공간인 금천예술공장을 통해 문화를 접했고 이제는 '예술하는 아줌마'로 변신했다. 이들은 현대미술가 임흥순씨가 길에서 나눠준 전단지를 받아들고 8주짜리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고 작품으로 표현하며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심리 치료와 사회적 소통까지 나누는 기회를 얻었다.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형제들 뒤치다꺼리로 평생을 보냈던 한 주부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생계활동과 상관없는 지적 활동, 예술활동을 통해 내 생활에 활력을 얻고 내 삶도 진화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금천예술공장 내에 어엿한 작가 스튜디오를 배정 받았고 인근 공장 근로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주중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동네 주민들까지도 미술과 전시에 대해 느끼던 '높은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풀뿌리 문화'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고 생활 곳곳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문화는 가진 자들이 누리는 호사'라는 우리의 편견부터 걷어내야 한다. 문화가 무엇인지부터 국민 각자가 다시 생각해 접근하고 수요자인 동시에 공급자가 돼야 문화 융성을 이룰 수 있다.

◇문화는 생산이다='문화'를 영어로는 '컬처(Culture)'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경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문화'란 예술적·지적 성취를 기반으로 한 '생산'의 토대가 되는 생활방식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문화활동이 반드시 돈을 들여 공연을 보거나 시간을 내 전시를 보는 등 '소비'하는 여가활동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금천미세스'의 경우 차 마시고 수다 떠는 일상이나 개개인의 경험이 예술과 소통하는 방식이 되고 또 이 같은 활동이 생활의 원동력으로 선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오늘날의 문화는 생산의 동력이 되는 '자원'으로 분류된다. 산업화 시대에는 석탄과 석유가 중요한 생산자원이었다면 이제는 '문화 자원'이 생산력을 이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말 입법부를 통과한 '문화기본법'은 제9조 5호에 '문화 자원의 개발과 활용'을 명시하고 있다.

'문화 자원'에 대해 박광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유형·무형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요소들이 문화 자산이 될 수 있다"며 "창조와 통찰을 이끄는 영감부터 경제적 부가가치나 산업적 이익을 만들어내는 문화산업, 콘텐츠산업, 미디어 융합을 통해 생산되는 것 모두를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지방자치단체의 시·군 단위 문화원이 보유한 각종 향토 사례도 문화 자원이 될 수 있다. 제조업 시대에는 철광석을 자원으로 1차 가공물인 철판을 생산해냈듯 문화 정보화 시대에는 이들의 '디지털화'가 1차 가공이며 이 콘텐츠를 가공하고 재생산한 2차·3차 생산물이 무한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경우 국어학자·한문학자·영어전공자 등 향토문화 전공자, 문화인류학자 등 인문학 전공자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문화는 권리다=문화는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할' 우리의 권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문화 융성'을 기치로 '생활 속의 문화, 문화가 있는 복지, 문화로 더 행복한 나라'를 국정이념으로 내건 현 정부는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의 '문화향유권'을 법제화·명문화한 문화기본법은 외국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여러 정책 중 눈에 띄는 것은 '문화영향평가제'다. 환경영향평가제·성별영향평가제를 실시하듯 정부정책에 입각해 문화적 영향에 대한 사전 평가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도시를 세울 때 도로·교통·병원뿐 아니라 문화적 영향을 고려해 공공도서관·박물관과 미술관·문화예술회관 등의 시설물을 필수적으로 논의하며 역사성을 간직한 도로 이름의 활용, 기존 문화 유적의 활용, 원주민과 신이주민의 융합 등을 포괄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자리잡으면 이제 공단을 조성할 때도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이 고려되고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을 때도 입지조건에 역사·문화를 입혀 더 '예쁘게'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화는 생활이다=지난해 개관한 은평구의 청소년 문화공간인 '신나는 애프터센터'는 하루 이용 청소년만도 100~120명에 이른다. '청소년이 없는 청소년센터'가 부지기수인 현실과 50평 남짓한 부지에 들어선 아담한 4층 건물에 불과하다는 점, 1층 마을인문학도서관의 방문객 수는 제외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곳은 밴드연습실·노래방·미술실·댄스실 등을 비롯해 숙제도 하고 회의도 하고 모여서 놀 수도 있는 다목적 동아리방 등을 확보하고 있으며 방과 후와 공휴일은 청소년들에게 이용 우선권이 있다. 자치회의에서는 청소년 스스로가 운영 프로그램까지 제안, 기획하며 건의함을 정리하고 개선안을 정리하는 등 발전적 운영까지도 이용 주체가 이끌고 있다. 강영숙 신나는애프터센터 총괄부장은 "개관 2년 전부터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 청소년들이 참여한 자치회의가 매달 열려 지금의 운영기반을 마련했고 이를 토대로 한 자발적 운영이 청소년 이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찾아오게' 만든다"고 말했다.

'풀뿌리 문화'의 확산은 이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은 풀뿌리 시설기관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거창하게 약속을 정하고 정장을 차려입고 문화를 누릴 게 아니라 편안한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도 문화를 즐기러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문화를 누리는 사람은 왕족과 종교인, 도시 상류층이었지만 근대화와 함께 '문화 민주화'가 이뤄졌다. 문화에 대한 권리가 커지면서 민중이 즐기는 향토문화·대중문화에 대한 가치가 재평가됐고 요즘에는 누구나 참여하는 생활밀착형 예술인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가 확산되는 추세다.

커뮤니티 아트, 이른바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이 같은 청소년문화센터뿐만 아니라 향토문화회관, 지역 공립도서관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진행하는 고전인문학 프로그램의 경우 21개 도서관에서 43개 프로그램, 200여 강의가 운영 중인데 거의 모든 강의가 만석이다. 개포도서관을 이용하는 기영상(65)씨는 "은퇴 후 문화 향유의 갈증을 해소하면서 문학·예술 등의 안목을 열어가고 있다"며 "재교육과 사회적 선순환에 도움이 돼 창의적 일상을 설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상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풀뿌리 문화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되 지역의 관 주도나 시설 위주보다는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 속에서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며 "주체와 의식의 변화에서 시작해 지역·전통·역사 등 다양한 소재를 갖고 다양한 문화를 활발하게 육성한다면 정체성 찾기, 정신문화적 특성 찾기까지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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