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서 대세론(大勢論)이 강했던 때는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후보로 나선 1997년과 2002년이지 싶다. 특히 '이회창 대세론'이 최고조이던 2002년을 절정으로 꼽을 만하다. 당시 여든 야든 이 후보에 대적할 만한 적수가 없었다. 3김 시대가 저문데다 '대쪽 총리' 이 후보에 대한 국민의 호감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새천년민주당에서 이인제 후보가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렸으나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 민주당 경선 직전까지 이회창 후보의 대선 연패는 상상조차 힘든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아무도 예상 못한 반전이 찾아온다. 노무현 돌풍에 휩싸여 이 후보 대세론이 한순간에 꺾여버린 것이다.
만국 공통으로 선거철, 특히 대선시즌이 되면 이런 말이 회자되곤 한다. 선거가 임박해 대세론을 이루는 사람은 당선 가능성이 높지만 한참 남은 상황에서 대세론을 형성하면 필패한다는 얘기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의 대세론이 1년 이상 이어지면 싫증을 낸다고 한다. 반면 선거 즈음에 떠오른 새 인물에 대해서는 신상은 물론 주의·주장에 관심과 호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의 대선 초반 판도가 여기에 들어맞지 싶다. 공화·민주 양당에서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인기가 치솟자 젭 부시 전 주지사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세론이 급속히 사그라드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클린턴의 대세론에 흠집이 나 대선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 등이 "대선판을 아웃사이더가 장악했다"고 평가할 정도다.
트럼프를 비롯한 아웃사이더의 반란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내년 대선까지 변수가 많은 탓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미국 국민도 기성 정치·정치인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는 점이다. 뿔난 유권자를 달랠 힐러리와 부시 캠프의 카드가 궁금해진다. 이래저래 미국 대선판이 점입가경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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