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세계 경기 악화라는 나쁜 뉴스가 금융시장에는 좋은 뉴스였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등의 경제회복이라는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로 돌변할 것이다."(로이터통신)
지금까지는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경기부양 정책 지속 기대감에 세계 금융시장이 호조를 보였다. 하지만 미국·영국의 경우 '나 홀로' 경기 회복세가 진행되면서 글로벌 중앙은행 공조 대열에서 예상보다 빨리 이탈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대혼란을 촉발하는 동시에 중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일본, 신흥국 등 경기둔화에 시달리는 대다수 국가들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국 간 디커플링(비동조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연준의 출구전략이라는 대형 암초가 지나치게 빨리 돌출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이라크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가세해 삼각파도가 몰아치면서 세계 경제는 조만간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영국, 공조 대열에서 조기 이탈하나= 20일(현지시간) 공개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은 글로벌 경제의 최대 리스크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회의록에 따르면 상당수 위원들은 "미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며 "연준이 부양정책 축소를 향해 더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준 내에서 매파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준금리 조기 인상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회의록은 "많은 위원은 연준 목표(인플레이션+완전고용)에 예상보다 빨리 근접한다면 서둘러 통화조절 정책에서 벗어나는 게 적절하다고 언급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대다수 참가자들은 경제활동·고용시장·인플레이션 등 추가 경제지표를 지켜봐야 한다며 당분간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경기지표만 호조를 보인다면 기준금리를 조기에 인상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 최고경영자(CEO)는 "의사록이 예상보다 매파적"이라며 "앞으로 몇 차례 나올 고용 보고서에서 임금개선 추세가 확인되면 연준도 빨리 움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조기 인상은 신흥국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형 충격을 몰고 올 게 뻔하다. 지난해 5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사했을 때도 일부 신흥국이 금융위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이는 기준금리 인상의 충격과 비교하면 본 게임을 앞둔 리허설에 불과하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자신의 이름을 따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스페펜 젠 대표는 "금융시장 요동의 진정한 방아쇠는 중동이나 러시아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아닌 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역시 조기 기준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날 공개된 8월 영란은행(BOE) 통화정책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들 9명 가운데 2명이 경기 회복과 실업률 하락 등을 이유로 금리인상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방향에 대해 반란표가 나온 것은 2011년 7월 이후 처음으로 올해 안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 리스크마저 재등장=설상가상으로 중국 경제마저 냉탕온탕을 오가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지더니 8월 들어 제조업·신용·산업생산 등이 일제히 이상 신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8월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는 50.3으로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기준선인 50을 겨우 넘겼다.
세부 항목별로는 신규주문지수가 51.3으로 3개월 만의 최저치를 나타냈다. 생산지수도 3개월래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뒀고 고용지수 역시 직전월에 비해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13일 나온 실물경제지표는 모두 전망치를 밑돌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7월 산업생산은 시장 전망치보다 낮은 9%에 그쳤고 1~7월 평균 고정자산투자 증가율도 17%로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다리우스 코왈츠크 크레디트아그리콜 전략가는 "중국 정부가 추가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며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달성 여부는 중국 정부가 언제 행동에 나설지에 달려 있다"고 언급했다.
그나마 중국 경제는 경착륙 가능성이 줄었지만 유로존은 조만간 더블딥(이중침체)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크다. 유로존 1위 경제대국인 독일의 2·4분기 성장률은 -0.6%를 기록했다. 특히 유로존 7월 물가 상승률은 0.4%로 2009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 경제 비중이 17%에 달하는 유로존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경우 중국 등 수출 중심의 신흥국 경제는 더 휘청거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역시 2·4분기 성장률이 -6.8%로 3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