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앞둔 대한지적공사는 채용에 앞서 입사지원서를 싹 뜯어고쳤다.
지난해까지 써온 응시원서가 출신학교와 병역사항, 보유 자격증 등 개인 신상과 스펙(자격조건)을 묻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올해 새로 만든 지원서에는 직무 관련 경험과 활동을 적는 공간이 대폭 늘어났다. 기술직 측량 부문 원서에는 지원자가 측량과 관련해 어떤 학교 수업을 이수했고 그 과목 성적은 어땠는지, 어느 기관에서 무슨 직업교육과정을 몇 시간 배웠는지 등을 자세히 묻는 방식이다.
지적공사는 공공기관 최초로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핵심직무역량 평가모델'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이처럼 채용제도를 바꿨다. 공사 관계자는 "스펙 대신 구체적인 직무요건을 제시한 뒤 해당 직무 역량을 가진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라며 "스펙을 초월한 채용으로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4곳 가운데 3곳은 스펙이 채용과정에 보통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응답은 '다른 수단으로 업무 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워서(40.2%)'였다.
스펙으로 직원을 뽑고 싶지 않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결국 스펙 중심의 채용을 반복하는 기업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게 바로 핵심직무역량 평가모델이다.
이 모델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개발하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바탕으로 삼는다. NCS가 업무마다 필요한 지식과 기술·소양 등 직무능력을 체계화시키면 여기에 기업의 인재상과 핵심가치를 반영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평가모델을 만든다.
기존 방식과 가장 큰 차이점은 개인신상 중심의 입사지원서 대신 지원자의 직무와 경력·경험을 상세하게 기록하도록 하는 역량지원서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또 영어나 상식을 묻는 필기시험 대신 인성과 직무능력, 직무 지식 등 직무 적합성을 평가하는 역량테스트를 도입하고 면접 역시 직무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발표·토론 등 다양한 유형의 과학적 도구를 쓴다.
고용부 관계자는 "올해 180여 기업에 핵심직무역량 평가모델을 보급할 것"이라며 "현재 경영관리와 생산관리·마케팅 등 6개 직군 평가모델을 개발했고 2017년까지 20여개 직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모델을 적용한 기업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지난달 대한상의가 시범사업에 참여한 현대모비스와 대우건설·우리은행 등 3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곳이 만족한다고 답했고 20곳은 이 사업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이 모델을 활용해 신입사원을 뽑은 자동차부품 기업 코리아에프티 관계자는 "직무 수행에 대한 의지나 입사 욕심이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지원 의사를 철회했다"며 "직무 관련 능력을 쌓은 사람 누구나 서류전형을 통과하게 해 직무 목적에 가장 알맞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경천 대한상공회의소 자격평가서비스팀장은 "여전히 실제 직무능력보다는 출신학교 같은 스펙을 선호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많은 만큼 공공 부문부터 이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회 전반에 스펙 초월 채용시스템을 확산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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