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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불황으로 로펌업계의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전관'에 대한 로펌업계의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법원과 검찰을 떠나 변호사 시장으로 나가는 판검사가 대폭 줄어들고 있다.
10일 대법원과 법무부에 따르면 2008년까지만 해도 한 해 100명을 넘었던 퇴직 법관 수가 2012년과 2013년에는 절반 수준인 50여명으로 줄었다. 올해 역시 2월 13일자로 단행될 고위법관 인사를 앞두고 퇴직 처리된 법관 수가 28명에 그쳐 총 퇴직자 수는 지난해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해 동안 사표를 쓰는 검사들의 수는 지난 2009년 무렵 114명에 달했지만 2012·2013년에는 74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올 초 단행된 상반기 정기인사를 앞두고 퇴직한 검사 수는 16명에 불과하다.
판검사들이 퇴직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법조계의 전반적인 불황이다.
최근 법조계는 국내외 경기의 불황과 법률시장 개방에 따른 외국계 로펌의 진출 등의 악재가 겹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로스쿨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변호사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서 수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처럼 법조계 전반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변호사 개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다 2011년 5월 소위 전관예우방지법으로 불리는 변호사법이 개정된 후 개업을 꺼리는 상황은 가속화됐다. 이 법은 법관·검사·군법무관 등은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할 때까지 근무한 법원과 검찰청 등에서 처리한 업무 관련 사건을 퇴직한 날로부터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설령 법관이나 검사가 퇴직을 하더라도 로펌 측은 "전관의 메리트가 크게 떨어졌다"며 예년같은 적극적인 영입전을 펼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로펌이 '모셔갔다'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골라잡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과거에는 다른 로펌에 영입이 확정된 퇴임법관을 끌어오기 위해 더 많은 연봉이나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접근하는 경향은 찾아 볼 수 없다"며 "로펌 사정도 예년 같지 않은 만큼 훨씬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무를 주로 하는 중소형 로펌 역시 "영입 비용이 줄지는 않았다지만 늘지도 않은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몇년간 업무성과와 상관없이 연봉을 지급한다는 등의 유예기간을 준다거나 정년을 보장해준다거나 하는 대우 측면에서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재 이탈'을 줄곧 걱정해왔던 법원과 검찰은 이 같은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대법원 한 관계자는 "과거 인사제도 아래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탈락 후나 법원장 임기 만료 후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던 우수 법관들이 '평생법관제' 등의 시행으로 조직에 남아있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며 "현 상황이 잘 정착된다면 '전관예우'라는 사법부 불신을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효율적이고 신뢰도 높은 판결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 역시 "범죄 유형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험이 많고 뛰어난 수사인력이 외부로 나가지 않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몇몇 판검사들은 고위직군의 퇴직이 줄며 승진 적체가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 개업이라는 탈출구마저 사라진 이상 인사권자에 대한 눈치보기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법원의 한 판사는 "불과 몇년 전만해도 평판사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식으로 윗선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다"며 "조직에 있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모두가 인사권자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성향이 법관의 판결 중립성이나 검찰의 수사 중립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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