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남아 돌아 그랬다면 그나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재원이 충분하다면 직원들의 복지수준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시 대부분의 자치구는 그런 곳이 아니다. 평균 재정자립도는 41.8%로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실정이다. 제 힘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 정부 지원금에 매달리는 신세다. 무려 16개 자치구가 예산이 없어 무상보육을 중단할 위기에 내몰렸을 때도 이를 채워준 것은 서울시민을 포함한 국민의 혈세였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연히 사용처가 사라진 직원자녀 보육비를 불용자금으로 남겨둬 내년 사업에 대비하든가 양육수당처럼 긴급하게 추가 자금이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올해 안 쓰면 어차피 사라질 예산이라며 제 식구 배 불리는 데만 급급했다. 남의 눈을 의식해 보육비라는 명칭을 버리고 '가족사랑나눔비' '재능개발비'와 같이 바꾸는 꼼수도 부렸다. 그래 놓고 무상보육 지원예산을 국비로 지원하고 보조금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몰염치는 어디서 나올까 싶다.
구청의 염치없는 행태는 단순히 예산을 상식 이하로 집행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좁게는 구민의 믿음을 저버린 행위이며 넓게는 국민의 혈세와 서민이 받아야 할 복지혜택을 중간에서 가로챈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서울시 자치구들은 지금이라도 구민들에게 사죄하고 편법 지급된 자금을 원상복귀시켜야 한다. 국민들도 잘못을 시정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내년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엄중히 심판하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