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쇠사슬에 묶인 흑인 노예.
족쇄(足鎖)하면 떠오르는 영상입니다. 메케한 흑 먼지를 일으키며 끌려가는 검은 몸뚱이는 자유를 잃은 비참한 군상(群像)을 연상케 합니다. 얼마 전 개봉했던 할리우드 영화 ‘장고’에서도 보았습니다. 흑인 노예들의 절망에 찬 눈빛을.
자유가 허락된 현대인에게도 비슷한 얼굴을 봅니다. 월요일 아침 만원 버스를 기다리는 월급쟁이의 모습에서입니다. 회사에 다닐 때 필자도 종종 그랬습니다. 몸살이라도 걸린 아침에는 침대 밖으로 나서기가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은 아이러니. 이제 월급쟁이가 아닌 오너로 회사를 경영하니 예전 일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이제 사장의 눈으로 바라보니 직장인의 태도가 못마땅하게 느껴집니다. 금주에는 초보 경영인을 위해 직원들의 근태관리(勤怠管理)를 논할까 합니다.
◇스타트업의 근태관리, 융통성이 생명
근태관리규정(勤怠管理規程)이란 조직 구성원들의 출근과 결근 사실을 관리하기 위한 기록 문서입니다. 회사는 직원들의 근태기록을 통해 조직 구성원의 지각 빈도수, 결근일수를 기록하고, 근무성적평가의 주된 요소로 삼습니다. 대기업과 달리 소규모의 벤처기업은 근태관리가 더 엄격해야할 것이라고 초보 사장들은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체계가 잡히지 않은 조직인 탓에 관리규정 마저 없다면 기본적인 업무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근태관리가 엄격해야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작은 벤처회사에서 원칙만 따질 경우 직원들의 불만이 쌓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례를 보겠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업체인 A사는 대표와 직원 간에 근태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근무태도를 놓고 감정이 틀어졌습니다.
회사 대표는 “일하는 동안 개인 메신저는 기본이고 음악을 틀어놓고 드라마를 보며 작업을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주의를 줬는데도 근태가 불성실한 것이 못 마땅하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프로그래머가 자유분방하게 일하는 게 일반적인 정서지만, 사장의 입장에서는 일하는 동안 집중해주길 바란다는 지적입니다.
직원 B군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습니다. 그는 “대학원에서 같이 일할 때는 대표도 아무렇지 않게 하던 습관인데 이제는 입장이 달라졌다고 간섭한다”며 “직원이 사장처럼 일하길 바라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반문합니다.
다른 회사의 케이스도 눈길을 끕니다. 매장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벤처기업 C사의 대표도 직원들의 근태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는 “영업사원을 2명이나 정규직으로 채용했는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일을 게을리 하고 있다”며 “8월 달에는 직원 2명이 발굴한 거래처보다 대표인 내가 뚫은 신규 업체가 더 많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양측이 맞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장은 돈을 적게 주고 일을 더 많이 시키고 싶은 것이고, 직원은 돈을 더 많이 받고 일은 적게 하고 싶은 까닭입니다. 이를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곡선’에 빗대어 보면 ‘사장과 직원의 욕망 곡선’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돈을 적게 주고 많이 일을 시키고 싶은 ‘사장의 욕망 곡선’과 돈은 많이 받고 일은 적게 하고픈 ‘직원의 욕망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업무량(노동강도)와 임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직원의 근태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사용자인 대표이사의 욕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설득력 있습니다. 사장 스스로가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를 돌아보면 자신도 그렇게 열성적으로 일하던 직장인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사장처럼 일하지 않는 직원이 밉게 보이는 건 아닐까요?
직무 태만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직장인도 문제입니다. 회사 일은 게을리 하고 월급을 받는 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형편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직원 스스로가 일에 몰입할 수 있을까요.
◇직원의 근무태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라
초보 사장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의욕이 앞선 탓에 벌어집니다. 직원이 사장처럼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업무능력이 낮다고 평가하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닙니다. 주인과 손님은 엄연히 다릅니다. 회사 직원들을 ‘군식구’에 빗댔다고 항의할지 모르지만 회사의 주인과 똑같은 마음 자세를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선배 경영인은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 직원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며 “나 역시 창업 초기에 많은 직원을 해고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몇 달 동안 직원을 뽑기도 하고 해고도 했지만 결국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본 끝에 좀 더 합리적이고 영리한 해결책은 찾았다고 합니다. 신규로 채용한 직원을 2~3개월 동안 혹독하게 업무훈련을 시킨 뒤 조금씩 풀어줬다는 것입니다. 일을 제대로 가르친 후에는 스스로 터득한 대로 할 수 있게 자율성을 부여한 셈입니다. 초반에 확실하게 일을 배우게 했기 때문에 나중에 사장이 나서서 쓸데없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일을 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잡혔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일에 대한 문제는 엄하게 꾸짖어도, 인간적인 면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 직원에게 싫은 소리를 해도 감정의 앙금이 남지 않으면 대체로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근태문제는 창조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획일적인 잣대만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조언. 대표적인 예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Google). 구글은 업무시간의 20% 즉,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하루는 자기 본래 분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창조 경영의 시발점으로 자랑하는 ‘20% 타임제’입니다. 회사 직원은 누구나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도 회사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매진할 수 있습니다. 구글 내에서 가장 창조적인 성과물들은 업무시간의 80%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나머지 20%’에서 나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새내기 경영인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태문제의 핵심은 회사 내에서의 ‘군기와 절도’가 아니라 노동 생산성 즉, 업무의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열심히 일하는 척 하는 직원을 원합니까? 아니면 하루 종일 노는 것 같아도 창조적인 성과물을 내놓는 직원이 필요한 것입니까? 경영자라면 답은 뻔합니다.
직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억지로 채석장에 끌고 가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벤처 기업가는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창조적으로 일해야 하는 모바일 시대에 ‘근태관리(勤怠管理)’라는 구태의연한 기준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수갑을 채워 일을 시켜야 한다면 그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이 됩니다. 억지로 시키는 일은 하는 사람은 물론 지시하는 사람도 곤혹스럽게 합니다. 적어도 초보 사장이라면 근태문제에 있어서는 열린 자세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보인 제가 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에서 힌트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성공하는 사업가는 직원들이 사장처럼 일하게 만드는 경영자다. 이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서 가능해진다.”
/안길수 (주)인사이트컴퍼니 대표. 벤처기업가.(ceo@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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