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정신은 호흡부터 영혼까지 머금은 붓질에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지 위에 수묵이라는 형식은 정통성으로 맥을 유지해주는 한편 제약이자 깨뜨려야 할 틀로 작용해 왔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 조환(54)도 이 점이 늘 고민이었다. 한국화가 전통 재료에만 얽매여 있으면 '현대 한국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자문(自問)이었다.
그래서 그는 강철을 택했다. 강철로 그린 사군자를 선보인 조환의 개인전이 22일까지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다.
그의 난초는 활보다 날렵하고 대나무는 창보다 강인하며 보석이 부럽지 않을 그의 매화는 단아함을 내뿜는다. 작가는 "현대 한국화를 고민하면서 생각은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려 하지만 행동은 옛날 방식으로 제약 받는다"며 "시대가 변했다고 정신까지는 변하지 않지만 형식은 답답한 전통의 굴레를 벗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철을 자르고 용접해 제작하는 그의 한국화는 지난 2007년 금호미술관에서 첫 선을 보였고 지난 5년간 더욱 정제돼 이번 전시를 통해 20여 점의 신작이 공개됐다. 전통에 대한 확신은 그대로지만 강철이라는 대안적 재료를 통해 형식만이 바뀌었다.
한국화의 핵심인 '획'은 그대로 살아있다. 작가는 "획을 긋고 획의 표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획이 가진 구조적인 매력은 용접으로 잘라내도 고스란히 그 함축성을 담아낸다"고 설명했다. 먹이 아스라이 퍼져가는 번짐의 매력은 없는 대신 시간의 흔적인 녹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조환의 작품은 전통 재료에서 벗어났다는 점 외에도 사각의 액자틀과 평면 그림으로 머무르던 한국화를 공간을 장악하는 입체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는다. 작품을 벽에 바짝 붙이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둔 채 전시하기 때문에 조명이 드리워진 작품 뒤로 그림자가 생겨난다. 그림자 덕분에 난초에는 바람의 흔들림이, 대나무에는 서걱거리는 댓잎소리가 함께 느껴지는 듯하다. 관람객이 자리를 옮겨갈 때마다 그림자의 형태가 바뀌는 것 또한 작품의 매력이다. (02)733-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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